전국 1905개 고교에서 132만4000명이 응시한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11일 오전. 서울의 한 여고 교문으로 교복 차림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들어섰다. 올해 첫 전국단위 수능 모의평가를 앞둔 학생들은 얼굴 표정만으로도 학년을 짐작할 수 있었다.
1학년 중에는 친구들과 손을 잡고 “깔깔” 웃는 십대 소녀의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부담감에 짓눌려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3학년 학생은 “늦었어요”라며 무뚝뚝하게 돌아섰다. 충혈된 눈, 무거운 발걸음, 처진 어깨는 ‘세계 최고’라는 학업 스트레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 학교 세 시험=연합학력평가는 수능 대비용 모의평가지만 1, 2, 3학년이 모두 다른 룰을 적용받는다(표 참조). 2016학년도 수능을 보는 고3 수험생은 이명박정권이 내놓은 ‘A/B 수준별 수능’의 마지막 학년이다. 국어와 수학이 A/B 선택형이다. 재작년까지 영어도 선택형이었지만 지난해 통합형으로 바뀌었다. 2017학년도 수능을 보는 고2 학생은 국어·수학·영어가 ‘이명박정권 이전’으로 돌아갔다. 수학만 문·이과에 따라 가/나형으로 구분되고 국어와 영어는 통합됐다. 다만 박근혜정부가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집어넣었다. ‘2018학년도 수능 버전’이 적용되는 고1 학생들은 한국사 필수와 함께 영어를 절대평가로 치렀다.
한 학교에서 세 가지 형태로 시험을 본 것이다. 그래서 학년별로 고민하는 지점도 달랐다. 1학년 조모(16)양은 “수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같은 학년 서모(16)양은 “수학 학원을 더 다녀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했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수학에 변별력이 쏠릴 것이란 걱정이다.
2학년은 ‘재수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짙게 깔렸다. 재수를 하면 영어를 절대평가로 치러야 한다. 필수인 한국사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했다. 이모(17)양은 “1학년 때 국사를 안 배워 교과서도 없다. 중학교 책으로 자습한다. 국사 학원을 따로 다니는 아이도 있다”고 전했다.
3학년은 난이도가 걱정거리다. 한모(18)양은 “지난해에 수학·영어가 지나치게 쉬워 이번엔 어려울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고 했다. 서울의 한 여고 교감은 “한국사 때문에 3학년보다 1, 2학년 시험이 늦게 끝난다. 학년별로 다 다른 시험을 치러 학생과 교사 모두 혼란스럽다”고 했다.
◇조변석개(朝變夕改) 대입제도의 희생자들=수능은 앞으로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달에 수능 오류와 난이도 안정화 대책이 나온다. 중장기 수능 제도 개선책도 하반기 발표가 예정돼 있다. 2018년 전면 시행되는 문·이과 통합교육 과정에 따라 2021학년도 수능은 다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부산의 한 고교의 진로진학담당 교사는 “무슨 스마트폰 앱 업데이트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혀를 찼다.
오종훈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십수년 입시를 치러오면서 한 학교에서 각 학년마다 다른 시험을 치르는 건 처음 본다”며 “수능은 12년 공부를 한 번에 평가하는 고부담 시험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도경 박세환 기자 yido@kmib.co.kr
[올 첫 전국연합학력평가] ‘한 학교 세 시험’… 대입 실험 내몰린 학생들
입력 2015-03-12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