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나방의 죽음]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 비평 에세이… 삶과 죽음에 대한 ‘진리’ 속깊은 사유

입력 2015-03-13 02:53

20세기 초반 영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1882∼1941·사진)는 전통적 소설 작법을 탈피한 ‘의식의 흐름’ 기법의 소설로 유명하다. 10세 때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 이후 수차례 자살 기도 끝에 일찍 생을 마감한 개인사는 울프라는 이름에 비극적 낭만성을 입히기도 했다.

그는 탁월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사후 남편 레너드가 편집한 총 4권의 에세이집 중 제1권에서 발췌한 문학 에세이 선집이다. 에세이하면 흔히 ‘개인사의 산책’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은, 울프 특유의 날카로운 독법으로 해부하고 평가한 문학비평 에세이다. 제인 오스틴, 헨리 제임스, 토마스 하디, 월터 스콧 경 등 19세기 영미 문학을 수놓은 소설가들은 물론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까지 넓게 그물망을 폈다.

작가론·작품론이지만 정색하고 쓴 비평의 세계가 아니다.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경이와 감탄, 읽기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기쁨을 제공한다. 문학적 비유가 도처에 있지만 평가는 에두르지 않는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선 “한번도 달을 언급하지 않고 아름다운 밤을 묘사한다” “여성 중에서 가장 완벽한 작가, 불멸의 작품을 쓴 작가가 (42세에) 죽었다”며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그러면서 오스틴이 “예쁘지 않고 새침데기 소녀였다”는 개인 신상의 기록을 문학적 성취에 버무림으로써 오스틴의 소설을 다시 뒤적여 보고픈 충동을 갖게 한다.

에세이스트로서의 정수는 표제작인 ‘나방의 죽음’이다. 수록된 글 중 유일하게 문학적 비평에 발을 걸치지 않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로 읽는 이의 호흡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답다. 유리창 한구석에서 발견한 나방의 활기찬 날갯짓, 그 하루살이 인생의 에너지가 갖는 처연함을 창 밖의 광대한 하늘, 가득한 봄의 공기와 대비시켜 보여준다. 그 삶에 대한 의욕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이지만 끝내 죽고야 마는 나방. 일상의 소소한 풍경에서 ‘삶이 불가사의한 것처럼 죽음 역시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이끌어내는 힘이 거기에 있다.

이 책은 16편의 짧은 에세이들의 묶음이지만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소속 14명의 역자들이 3년간 매달려 번역했다. 역자 중 한 명인 김금주 박사는 “에세이지만 문학적으로 썼기 때문에 비유적이거나 중의적인 표현이 많아 번역이 소설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함께 읽고 토론하며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문장이 깔끔하고 유려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