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끊긴 건 두 달째부터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생 조모(28·여)씨는 지난해 4월 과외를 시작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생활을 꾸려가자니 학교에서 받는 조교 월급으론 부족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에게 주 2회 영어를 가르치고 월 60만원을 받기로 했다. 이 정도 돈만 꼬박꼬박 들어와도 빠듯한 지갑 사정에 숨통이 트였다.
시작하고 다음달부터 과외비 입금이 슬금슬금 늦어졌다. 학생 부모는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매달 초에 줄 돈을 중순에 주는가 하면 쪼개서 주기도 했다. 월말에 들어오기도 하고 아예 한 달을 건너뛰기도 했다. 조씨에게 그 돈은 생존수단이었지만 학부모는 ‘밀려도 무방한’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놓고 “내 돈 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과외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인 12월에 이미 두 달치가 밀렸다. 결국 지난 1월에 과외를 그만뒀다. 조씨는 “재능기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밀린 과외비는 통장으로 꼭 넣어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했다. 알았다던 학부모는 한 달치만 입금하고 연락을 끊었다.
◇만연한 임금체불=임금체불은 직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알바(아르바이트 근로자)가 받지 못한 최저임금 미달분, 학부모가 떼먹은 과외비 등도 임금체불에 포함된다. 개인이나 업종 분류가 안된 사업장의 체불임금은 관련 통계에서 ‘기타’ 사업장으로 잡힌다. 이 기타 사업장의 체불임금은 2010년 844억원에서 지난해 1777억원으로 배 이상 급증했다.
여기엔 요양보호사나 가사도우미 같은 돌봄서비스 종사자도 포함된다. 이들 상당수의 임금체불 문제는 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현실과 등을 맞대고 있다. 김모(49·여)씨는 2년 전 경기도 양주의 한 요양원에서 일했다.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 일하고 퇴근했다가 그다음날 출근하는 격일 근무였다. 이틀에 한 번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착시에 가까웠다. 혼자서 환자 7명을 돌보다 보니 정시 퇴근이 불가능했다. 밤에 3시간 정도 쉬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게 아니라 이틀에 할 일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격이었다.
이렇게 일하고 받은 월급은 최저임금을 적용했을 때보다 10만원 적은 140만원이었다. 그나마 140만원 가운데 10만원은 나라에서 주는 처우개선비다. 복리후생비인 처우개선비로 최저임금을 땜질하는 건 불법이다. 이를 항의하자 요양원은 근무 여건이 더 나쁜 ‘상주(常住) 요양보호사’를 들먹이며 “당신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대꾸했다. 상주 요양보호사는 시설에서 먹고 자며 일한다. 주 6일 근무에 월 175만원을 받는데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가 모두 근무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김씨는 지난해 6월 다른 요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요양보호사는 주부들이 생계를 위해 한푼이라도 벌려고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최저임금도 못 받는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암담하다”고 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최승현 부회장은 “요양보호사나 고시원 총무 등은 근무 구조상 정해진 야간 휴게시간을 제대로 못 쉬고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체불임금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못 받은 최저임금 소송 가능=그렇다면 못 받은 최저임금을 돌려달라는 소송도 가능할까. 충남 서산의 한 노인전문병원에서 2년7개월간 간병인으로 일하다 2011년 2월 퇴직한 연모씨는 병원을 상대로 체불임금 지급 소송을 냈다. 재직기간 중 최저임금을 못 받았다며 최저임금 미달분 2063만9531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이었다. 지난해 최종 승소했는데, 임금채권 소멸시효(3년)가 지난 부분을 빼고도 1206만6605원을 돌려받았다.
임금체불은 공장과 건설현장처럼 하청이 횡행하는 업종일수록 빈번하다. 인테리어 기술자 강모(50)씨 형제는 약 6개월 전 일한 대가를 여태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원청업체에서 공사대금을 받은 하청업체 사장이 잠적해버렸다. 강씨 형제는 지난해 9∼10월 19일간 서울 서초구의 빌딩 내부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받아야 할 돈은 728만5000원이다. 하청업체 사장은 통상 열흘 안에 정산되는 돈을 “연말엔 해결해주겠다”며 차일피일 미루더니 정작 해가 바뀌자 전화를 안 받았다.
“현장에서 먼지 먹어가며 소음에 스트레스 받으며 일했는데 인건비라도 제대로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죽 답답했으면 청와대 신문고에도 민원을 올렸습니다.” 강씨 형제가 원청업체를 상대로라도 집회를 하려고 하자 원청업체 측은 “집회를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경고했다.
강씨 형제는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강씨는 “그 사람(하청업체 사장)은 외제차를 타는데 지금은 또 차를 바꿨다고 한다. 모바일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 골프 치러 다니는 것 같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창욱 전수민 황인호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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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12 03:01 수정 2015-03-12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