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애완견 외교는 유명하다. 2012년 9월 베네수엘라 대선 때 푸틴은 블랙 러시안 테리어 한 마리를 4선에 도전한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에 대한 지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다. 차베스는 무난히 당선됐고 푸틴은 강아지 한 마리로 중남미 최대 맹방 베네수엘라와의 굳건한 관계를 재확인 했다. 쿠릴열도 반환 협상이 한창이던 2012년 7월 일본은 푸틴에게 아키타 토종개를 선물했다. 애견인 푸틴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쿠릴열도는 여전히 양국의 난제로 남아 있다.
애완견이 외교에 활용된 사례는 숱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첫 미국 방문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애완견을 위해 개목걸이와 인조 뼈다귀를 전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국견(國犬)인 진돗개 두 마리 ‘평화’와 ‘통일’을 보냈다. 북측은 ‘단결’과 ‘자주’란 풍산개 두 마리로 화답했다.
부임 당시부터 애완견에 대한 각별함을 드러냈던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는 피습 이후에도 여전했다. 사건 당일 그는 트위터에 “로빈과 세준이, 그릭스비와 저는 (한국민의) 지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글을 남겼다. 아내와 아들에 이어 애완견을 본인보다 앞세웠다. 작년에는 그릭스비 이름으로 트위터 계정까지 만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작년 말 ‘주한 미국대사의 외교 수단은 강아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애완견 외교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내용이었다.
리퍼트는 사건 이후 ‘국민대사’란 애칭을 들을 만큼 한국인들의 환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뉴욕타임스는 9일(현지시간) ‘마크 리퍼트 미 대사 공격을 놓고 한국 양분되다’는 기사에서 ‘공안몰이’로 분열되는 여론과 ‘석고대죄’ 같은 블랙코미디현상을 냉소적으로 보도했다. 끔찍한 사건마저도 외교적 성과로 활용하는 애완견 외교의 달인 리퍼트에게 배울 게 하나둘이 아니다.
정진영 논설위원 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애완견 외교
입력 2015-03-12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