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이상주의자들의 가슴 뛰는 도전… 경영의 본질을 묻다

입력 2015-03-13 02:47
세계 최초의 사무용 자동복사기인 ‘제록스 914’ 전시회 장면.
1960년대 뉴욕증권거래소 풍경.
'경영의 모험', 이 두툼한 책을 들춰보게 하는 건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때문이다. 유명인사들이 책을 추천하는 게 특별한 건 없지만, 1968년에 처음 출간된 이 낡은 책을 지금 시대 독자들 앞으로 불러낸 건 빌 게이츠가 아니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게이츠는 지난해 여름 자신의 홈페이지와 월스트리트저널에 "내가 지금까지 읽은 최고의 경영서"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그는 왜 이 책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팀을 만들어 재출간을 적극 도왔다.

지난해 가을 미국에서 40여년 만에 재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이 국내에도 소개됐다.

먼저 게이츠가 “‘저널리즘 명예의 전당’에 올릴 만하다”고 극찬한 5장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편을 읽어보자. 45페이지 분량의 이 글은 제록스라는 미국 복사기 업체의 등장과 성장을 묘사한다. 그것은 지금 시대 독자들이 익히 아는 구글이나 애플 이야기와 흡사하다. 도무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시장에 대한 도전이었고, 회사의 존폐를 건 위험한 결단이었으며, 결국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완벽한 모험담이다. ‘뉴요커’의 금융 부문 저널리스트였던 저자 존 브룩스는 하나의 위대한 기업 이야기를 통해 경영이 본질적으로 이상주의자들의 모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제록스 스토리를 다루면서 저자는 ‘기업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또 하나의 주제를 그 안에 배치한다. 이 또한 경영의 본질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르포와 인터뷰 등을 통해 제록스의 경영자들이 기업가의 책임과 성공의 대가를 깊게 고민한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지역 사회와 대학에 대한 기부액도 엄청났지만, 중요한 공공 문제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야말로 다른 기업들과 달랐다. 우파들의 불매 운동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제연합을 지지하는 전국적인 TV 캠페인을 벌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제록스 사장인 윌슨은 1964년 한 연설에서 “기업은 중요한 공공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 표명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단지 주주와 직원과 고객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발휘한 측면에서 제록스는 대부분의 19세기 기업과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주었다”며 “이 점에서 제록스는 20세기 기업의 전위나 다름 없었다”고 평가했다.

다음으로 4장 ‘주식 시장을 움직이는 손’을 보자. 비즈니스와 금융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미국 기자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는 글이다. “등락이 없다면, 부자들이 낮에 즐기는 어드벤처 연속극인 주식 시장은 제대로 된 주식 시장이라고 할 수 없다”로 시작되는 이 글은 1962년 5월의 마지막 주에 일어난 주가 폭락 사태를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다룬다.

대공황의 기점이 된 1929년 10월의 ‘블랙 프라이데이’ 이후 최대 폭의 주가 폭락이 일어났고, 사흘 만에 기적적으로 반등했다. 폭락의 원인이나 반등의 원인은 불분명하다. 저자는 이 사태를 자세히 조명하면서 주식 시장의 본질적 위험성과 놀라운 회복력, 그리고 인간의 투기심리를 보여준다. 그것은 주식 시장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해 5월에 일어났던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럴 수 있어요. 나는 사람들이 1∼2년 동안은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서는 다시 투기 행위가 쌓이다가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테고, 그런 양상은 신이 사람들을 덜 탐욕스럽게 만들 때까지 반복될 거예요.”

책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12개의 독립된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다. 기업과 증권 시장 이야기 외에 세금이나 통화 문제도 포함됐다. 한 사례를 집중 조명하면서 그 사례를 통해 부의 본성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세금인가, 이익이 먼저인가 고객이 먼저인가, 주주와 회사는 어떻게 공생하나 등과 같은 경영의 핵심적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형식이다.

한 편 한 편이 ‘문학적 저널리즘’이라고 할만한 우아함과 시대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깊은 메시지를 갖추고 있다. 기업이 왜 위대한 조직인지, 경영이 왜 가슴 뛰는 모험인지, 경제 이야기가 왜 인간의 이야기인지 알게 해준다. “존 브룩스의 책은 사실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고, 바로 그래서 시간을 초월한다”고 한 게이츠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