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사별 가족 위한다면… 때로는 무관심이 약

입력 2015-03-16 02:45

“남편이 살아있을 땐 모든 걸 다 해줬어요. 공과금도 남편이 냈고,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송금하는 일도 남편이 했어요. 아이를 키우는 건 내 몫이었고, 그 외 경제적 활동은 남편 몫이었죠. 남편이 떠난 지금, 아이를 혼자 키워 나가야 하는 현실이 두렵기만 합니다. 이 나이에 당장 들어갈 회사도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사도우미나 환경미화원뿐이에요. 이제 겨우 한숨 돌리나 했는데,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네요.”

부부 사별 모임에서 만난 김연희(가명)씨는 췌장암으로 2년간 투병하던 남편과 얼마 전 사별했다. 췌장암 남편을 간호하면서 많이 지쳤다고 고백한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보다 삶의 무게가 그녀를 더 힘겹게 만든다고 했다.

“남편이 떠나고 나면 나도 쉬고 싶었습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솔직히 남편이 떠나고 나면 몸은 편안해질 줄 알았어요. 주변에서도 절이라도 가서 당분간 쉬라고 권하더라고요. 지금 제가 절에 들어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녜요.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뒷바라지하려면 나가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해요.”

의외로 많은 가족들이 사별후 곧바로 생활전선에 나선다. 자녀들이 어리다면 여성은 떠난 아빠의 몫까지, 남성은 엄마의 몫까지 해야 한다. 김씨처럼 생활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전업주부로 평생 살아온 여성의 경우 남편의 부재로 그동안 해본 적 없는 경제적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분명했던 부부 관계에서 사별을 겪을 경우 이별의 슬픔에 경제적 상실감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는 어설픈 위로의 말보다 홀로 설 수 있도록 경제적 사정을 이해하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해 보인다.

한편 자녀들이 직장을 다닐 정도로 성장한 경우라면 부모가 겪는 고뇌의 형태가 조금 달라진다. 이들은 오히려 ‘무관심이 약’이라고 말한다.

“자식들이 행여 내가 안 좋은 생각이라도 할까봐 바깥에 나가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라고 말해요. 그런데 나는 아직 일상을 즐길 만큼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애들 눈치 보여서 억지로 바깥에 나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들은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도 나를 생각해 해외여행을 같이 가자고 권유하는데,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앉아있다 보니 몸이 더 힘들더군요.”

자녀들은 홀로 남겨진 부모를 걱정해 취미를 갖고 다양한 일을 해보라 권한다. 그런 자녀들의 맘을 모르는 게 아닌 부모들은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마음이 쉴 틈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 사례에서 보듯 적당한 무관심이 아픔을 딛고 단단해질 시간을 가져다준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반드시 웃음으로 승화시킬 필요는 없다. 당장 무엇을 하기보다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게 먼저란 사실을 기억해둬야 한다. 마음의 균형은 다양한 활동이 아니라 생각을 비우는 여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