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57)씨는 내가 만나본 사업가 중 가장 기발했다. 열대(熱帶)의 하와이에서 모피코트를 팔았다. 1990년대 중반 한 모피업체가 컨설팅을 부탁했는데 “하와이로 가라”고 했단다. 이런 논리였다. “하와이는 아직 대중적인 관광지가 아니다. 부유층의 계절 휴양지다(지금은 달라졌지만). 유럽에서 겨울을 피해 쉬러 온, 돌아가면 모피가 필요한 잠재 고객이 바글바글하다.” 그 회사는 세계 최초로 하와이 호텔에서 모피 전시회를 열었고 대박이 났다.
4년쯤 됐나. 아이콘스엔터박스란 ‘아이디어 기획사’를 운영하던 그를 만났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봐, 아마 요리방을 차리면 돈이 될 거야. 노래방 말고.” PC방 찜질방 비디오방 같은 요리 전용 방 업소를 차리라는 거였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삼시세끼-어촌편’은 16.8%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상파를 훌쩍 따돌리고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인기를 끌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성공하기 힘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차승원 유해진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대형 스타가 없다. 함께 촬영한 장근석씨는 탈세 파문에 중도하차했다. 억지로 그를 빼고 편집한 화면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왜 어촌편을 겨울에 찍었는지 모르겠다. 칼바람 부는 어촌은 달려가고픈 전원 풍경과 거리가 멀었다. 그런 바람과 추위 속에 물고기가 잡히겠나.
이런 악조건을 다 극복하고 시청률 1위에 오른 것은 ‘요리’의 힘이다. 사람들이 조미료와 인스턴트식품 대신 ‘집밥’을 찾는 시대에 중년 남자들을 출연시켜 요리하게 했다.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아내는 “요리를 척척 해내는 걸 보면 속이 후련하다”고 말한다. 블로그마다 차승원이 했던 요리를 따라해 본 인증샷이 올라오고 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로 식구(食口) 개념이 약해지면서 요리는 현대인의 갈증이 됐다”거나 “회사를 위한 일만 하는 직장인이 온전히 자신을 위해 할 일은 요리밖에 없다”는 식의 거창한 분석 대신, 오치우씨는 “사람들이 요리 잘하는 사람을 멋있어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봐라. 자기가 만든 음식을 찍어 올린 사진이 수백만장이다. 요리는 명품 백이나 외제차처럼 과시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사진으로는 제대로 자랑하지 못한다. 맛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집에 초대해서 먹게 해야 완벽한 자랑이 되는데, 장보기와 설거지의 귀찮음이 과시 욕구 못지않게 크다.”
그래서 요리방을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온갖 신선한 재료와 다양한 조리시설을 갖춘 곳에 친구들 데리고 가서 한껏 멋 부린 요리를 해먹은 뒤 그냥 털고 일어날 수 있다면? 회식의 명소도 될 거라고 그는 주장했다. 어떤가. 리처드 랭엄은 저서 ‘요리 본능’에서 “요리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당신이라면 호모 코쿠엔스(요리하는 인간)의 DNA를 믿고, ‘삼시세끼’와 ‘냉장고를 부탁해’와 ‘오늘 뭐 먹지’ 같은 ‘쿡방’(요리 방송)의 인기를 업고 요리방을 차리시겠나.
성공보다 만족 찾기 위한 탈출구 아닌지
그런데, 막상 노래방 대신 요리방의 시대가 된다면 좀 씁쓸할 것 같기도 하다. 1991년 등장한 노래방은 고성장 시대의 방이었다. 성공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어야 내일 또 일할 수 있기에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고성장을 멈춘 한국은 더 이상 부서져라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과 아무리 일해봤자 성공에 이르지 못할 사람으로 점점 양극화돼가고 있다. 양쪽 다 성공 대신 다른 데서 만족을 찾으려 할 텐데, 혹시 그 대상이 요리여서 이런 열풍이 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
[태원준 칼럼] 노래방 대신 요리방 차려볼까… 과시 대상이 된 요리 열풍
입력 2015-03-12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