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여우인간’ 내놓은 창작 희곡의 거장 이강백… 세월호·싱크홀 절박한 감정으로 희곡 썼다

입력 2015-03-11 02:58

‘한국 창작 희곡의 거장’ 이강백(68·사진)이 신작을 내놓았다. 예술가에게 흔히 과장된 수식어가 더해지긴 하지만 고희를 앞둔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창작력을 자랑한다는 점에서 그는 현재진행형 거장이다. 작품 ‘여우인간’은 중견 연출가 김광보 연출로 3월 27일부터 4월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지난 몇 년간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면서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지난해 세월호 사건도 있었고 최근엔 싱크홀 사건이 잇따라 터졌는데, 그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예전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마치 무엇에 홀린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깊은 슬픔과 좌절감을 느꼈다”며 “이런 절박한 감정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이번 희곡을 썼다”고 덧붙였다.

여우한테 홀린 인간을 다룬 옛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여우인간’은 꼬리를 떼고 인간이 된 여우 4마리가 서울에서 겪는 일을 그렸다. 1971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줄곧 한국사회의 ‘오늘’을 말해왔던 그답게 이번 작품 역시 광우병 촛불시위가 있었던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사회를 다룬다. 관객들은 정보요원, 시민단체 대표 비서, 오토바이 소매치기, 비정규직 청소부가 된 여우들이 서울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뒤틀린 우리 현실을 깨닫게 된다.

다만 현실을 직접 극화하기보다는 우화 형식을 빌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이번에도 알레고리의 틀 속에서 재구성했다. 그는 “복잡다단하고 빠른 한국사회에서 에둘러 말하는 것은 직구를 던지는 것보다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희곡에서 시의성을 추구하면서도 보편성을 찾는 나로서는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여우인간’은 여우들이 경험하는 한국사회가 퍼즐처럼 펼쳐지는 옴니버스 스타일의 연극이다. 출연자만 25명이나 되는 데다 구성이 복잡해 실제로 공연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희곡의 완성도와 재미를 높이 평가한 서울시극단이 이미 예정된 작품까지 미루면서 공연키로 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강극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북어대가리’도 지난 6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구태환 연출로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작품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 파묻혀 북어대가리처럼 텅 빈 껍데기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4월 5일까지 이어진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