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했던 美 선교사 도마리아 아시나요

입력 2015-03-11 02:41

도마리아(본명 메리 도슨·1881∼1972·사진)는 한일합병 직후인 1912년 미국 남장로회의 선교사로 조선 땅, 광주에 왔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미국에 돌아갈 때까지 38년간 이 땅에 머물면서 고창 장성 나주 화성 등지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지금도 지리산과 무등산 일대에는 키 작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도마리아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한 미국인 여성 선교사 도마리아의 이야기를 담은 책 ‘도마리아, 조선에 길을 묻다’(서빙더피플)가 10일 출간됐다. 도마리아가 일기와 서간집을 근거로 1952년 미국에서 출간한 ‘Half a Life Time in Korea(조선에서의 반평생)’을 번역한 것으로, 원서에는 없는 도마리아 연보와 관련 사료를 추가했다.

책은 1912년 9월 2일 도마리아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목포로 향하는 배 안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해 한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배 안에서 쓴 1950년 7월 16일자 일기로 끝난다. 도마리아의 선교·봉사활동뿐만 아니라 광주 수피아여고 초대 교장을 지낸 그레이엄(한국명 엄언라)이나 한국간호협회를 창설한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 쉐핑(한국명 서서평) 같은 여성 선교사들의 활약상, 그리고 조선의 시대상도 담고 있다.

1881년 조지아주 태생인 도마리아는 대학시절 한국 선교사로 소명을 받고 조선으로 왔다. 독신으로 지내며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사역했던 도마리아는 여성들의 친구로 지내며 여성 지도자를 길러내는 데 일조했다. 1922년 오늘날 여전도회의 근간이 된 부인조력회를 창설했고, 쉐핑이 세운 여성신학교인 광주이일성경학교 등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또 광주 숭일수피아초등학교 교장으로 7년간 일했다. 1940년에는 일제가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미션스쿨을 자진 폐교하며 저항했으며 태평양전쟁 때는 6개월간 연금 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