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이형원] 염려를 극복하려면

입력 2015-03-11 02:11

개인의 행복이나 사회의 평안을 빼앗는 요소들 중 하나는 염려나 두려움이다. 강경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납치·테러사건, 어린이집 선생의 원생 폭행, 맨홀·환풍구 붕괴 사고 등 국제·사회적으로 놀라게 하는 사건·사고들이 발생할 때마다 유사한 일들이 자신이나 가족에게도 벌어지지는 않을지 불안해한다.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닌 두려움의 종류는 500가지에 달한다. 어두움, 소음, 고소 공포증 등이 일반적이라면 마늘에 대한 두려움, 접촉에 대한 두려움, 금(金)에 대한 두려움, 책에 대한 두려움,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두려움 등 특이한 것들도 많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염려하는 많은 부분은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진 것들이거나 현실화되지 않은 것들이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의 염려 중에 40%는 절대 일어나는 일이 없고, 30%는 이미 지나간 과거와 관련이 있어서 염려한다고 변하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12%는 주위 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판 때문에 하는 염려이고, 10%는 건강에 관한 것으로 오히려 그 염려 때문에 건강이 더 나빠지게 될 수 있고, 8%만 실제로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이라고 한다.

한 도시의 일곱 개 구역을 덮고 있는 30m 높이 안개의 수분량을 모으면 한 컵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미국 국립표준국의 발표를 읽어본 적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염려하는 것들도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실체가 적을 수 있다. 비록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건·사고가 생기더라도 그에 합당한 처리와 재발방지책이 강구되면 되는데도 여전히 염려와 불안 속에 놓여 살 때가 많다.

지난주 발생한 미국 대사의 테러사건은 우리 국민에게 또 하나의 염려를 더해주고 있는 것 같다. 많은 국민이 지난 며칠 동안 테러를 당한 미국 대사의 생명에 대해 걱정했는데, 이제는 미국·북한 등과의 미래 관계에 대해서도 염려와 걱정이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지나친 염려와 걱정은 우리 사회의 독이 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들에 대해 사회 지도층은 가장 합당하고 신속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을 두려움에 빠뜨리는 사건·사고에 매몰되다시피 하면 국민들로 하여금 더 큰 두려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균형감각도 중요하다.

삶의 염려와 두려움을 내려놓게 하는 일에 있어서 신앙 지도자들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백성들의 개인·공동체적 평안을 제공하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거듭 되새길 만하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 6:31∼34).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간디는 염려처럼 우리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이것을 가지고 산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말을 우리의 평안한 삶을 위한 귀한 조언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형원 교수(침례신학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