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을에서 천사를 만났어요.”
어느 날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내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료소에서 시몬이란 아홉 살 아이를 만났는데 웃는 모습이 천사 같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것이었다. 시몬은 뇌성마비를 앓아 걸을 수도, 의자에 제대로 앉을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시몬의 아버지는 아들의 팔과 다리를 의자에 묶은 채 데리고 다녔다.
두 살 때까지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던 시몬이 한 차례 고열을 앓은 뒤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우리 부부는 ‘천사 시몬’을 만나기 위해 아이가 있는 마을을 자주 방문했다. 시몬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보내 달라고 밀알복지재단에 요청했다. 그러자 재단 관계자는 시몬과 같은 장애 아동이 라이베리아에 많은지 물었다.
라이베리아에는 온갖 고난의 흔적이 있다. 그 흔적 중 하나가 극심한 가난과 내전, 질병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아픔을 알기에 우리는 평소 슈퍼마켓 앞에서 구걸하는 장애인을 보살피곤 했다. 나는 배움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라이베리아 장애인들의 현실을 전했다. 그러자 재단은 현지 조사 후 라이베리아에 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학교와 비장애 아동을 위한 일반학교를 함께 짓자고 제안했다. 장애 아동을 집 밖으로 불러 비장애 아동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육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4년 전 회갑 기념으로 들어온 축의금과 적금을 해지해 매입한 라이베리아 정커팜 지역의 땅이 떠올랐다. 전기도, 우물도 없는 공터였다. 이 땅을 매입한 후 “하나님의 소유이오니 이 땅에 그림을 그리십시오”라고 기도했는데 재단에서 특수학교와 강당 등 부속 건물을 지어준다니, 정말 기적 같은 응답이었다.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이 있는 ‘그레이스 학교’는 이렇게 세워졌다. 인근 마을 100여 가구의 아동 100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난해 5월 설립됐다. 나는 한국에서 공사에 필요한 모든 자재를 조달해 일반교실과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된 특수교실, 도서관, 강당, 교사 숙소, 운동장, 우물 등을 짓도록 했다.
나는 주중 매일 여러 지역의 현지인 성도들, 40∼50명의 현지인과 함께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마을 주민들은 누구보다 학교가 들어서기를 갈망해 공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트럭 바퀴가 진흙탕에 빠져도 공사는 계속됐다.
학교 공사는 마을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정커팜 마을에는 100여채의 집 외에는 기본 인프라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 학교 공사가 시작되면서 인부들이 마을에 상주하자 간식 및 식수 장수들이 들어와 상권이 형성됐다. 학교 건설로 지역 땅값이 30% 상승하고 거래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마을 주민의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기여했다. 우리는 여성과 장애인에게 함께 일할 기회를 주고 동등한 처우를 보장해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공사 시작 전 우리는 매일 인부들과 기도를 드렸다. 이들에게 교통비와 숙소를 지원했으며 공사 중 술·담배를 금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공사 기간 현장에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학교 공사 현장에서 기술을 연마한 인부들이 다른 곳에 좋은 조건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학교 건립으로 마을에 생기가 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역경의 열매] 조형섭 (14) 오지 마을 천사들 위해 봉헌한 그레이스 학교
입력 2015-03-12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