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형섭 (13) 세살 때부터 자갈 깨던 아이들 위해 학교 설립

입력 2015-03-11 02:57
세 살부터 자갈을 깨 생계를 유지하던 라지에(왼쪽)는 2012년 조형섭 선교사의 소개로 밀알복지재단을 만나 망치 대신 연필을 쥐게 됐다. 오른쪽은 교복을 입은 라지에 모습.

“안녕하세요. 밀알복지재단입니다.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마을에 열악하게 살고 있는 어린이가 있다면 돕고 싶습니다.”

2012년 한국 구호단체인 밀알복지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라이베리아에는 도울 아이들이 참 많다’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혹시 내가 발견하지 못한 빈곤 아동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세심히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선교센터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는 ‘자갈 마을’을 알게 됐다. 라이베리아 도시개발사업으로 고향에서 밀려난 하층민 5000여명이 모여 사는 곳으로 주민들은 바위를 깨 자갈을 만드는 일로 생계를 해결했다. 어른들은 큰 바위를 쪼개고,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쪼갠 작은 바위를 망치로 깨 자갈로 만들어 건축자재로 팔았다.

자갈 깨는 어린이들은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돌을 깨 1달러를 벌었다. 그나마 자갈을 판 아이들은 한 끼 식사비를 마련한 행운아였다. 자갈을 못 판 아이들은 다시 무거운 자갈을 머리에 이고 빈손으로 집에 갔다. 이곳 어린이들은 세 살부터 망치를 들고 일터에 나섰다. 학교에 가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이곳을 방문한 나는 우선 주민들에게 쌀부터 전달했다. 쌀을 나눈 후 마을 주민에게 꼭 도와야 할 아이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이들은 내게 세 살 때 자갈을 깨다 한쪽 눈에 파편이 튀어 시력을 잃은 소년 ‘주니어 보’를 소개했다.

나는 밀알복지재단에 자갈 마을과 주니어 보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동안 여러 비정부기구(NGO)가 찾아와 라이베리아를 돕겠다고 했지만 그저 말뿐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는 라이베리아에 온 재단 관계자들에게 만나자마자 “실제로 돕는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당신들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재단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한 뒤 자갈 마을과 주니어 보를 위한 사업을 전개했다. 재단은 세 살부터 자갈을 깨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설립했다. 또 주니어 보에게 각막 이식 수술을 지원해 시력을 되찾게 해주었다. 마을 첫 방문 당시 15명의 아이를 후원한 재단은 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156명을 지원하고 있다.

내가 재단과 협력해 사역을 하게 된 건 청렴, 투명함, 섬김과 희생 등 추구하는 가치가 맞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단은 지속적으로 라이베리아를 돕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이 때문에 나는 2013년부터 재단 라이베리아 프로젝트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선교사인 나를 돕지 말고 ‘나와 한 약속’을 지켜 달라는 의미로 재단이 제안한 개인 차원의 후원은 거절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사는 마을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혜택을 받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약속이 계속될 때까지 나는 재단과 계속 협력할 것이다. 어려운 이를 돕겠다는 마음이 지속된다면 라이베리아를, 나아가 아프리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라이베리아 복음 사역 28년, 그간 절망뿐이던 이 땅에도 희망이 싹트고 있다. 10년 후 변화될 라이베리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뜨겁다. 14년간의 내전에 이어 에볼라로 고통받는 땅이지만 주님의 사랑이 머문 곳이기도 하다. 주님은 이곳에 보낼 바울 같은 일꾼을 기다리신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 역시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선교 사명을 함께할 사랑의 동역자를 기다리고 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