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60) 독일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은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이었다. 이 같은 관심을 반영하듯 도쿄 아사히신문 본사 강연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장에는 일본 언론은 물론 AP통신 등 세계 유수 언론 기자 100명 이상이 몰렸고,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9일 아사히신문 강연에서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4년이 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파괴’와 ‘부흥’이라는 말은 전후 70년을 맞은 올해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 독일인은 과거 유럽과 세계에 고통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의 손을 내밀어준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며 독일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 자리에서 독일이 탈(脫)원전 정책을 채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방일 직전 메르켈 총리는 독일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독일이 조기 탈원전을 결정하고 재생에너지 보급을 추진하고 있다며 일본에도 같은 길을 갈 것을 권유한 바 있다. 그는 “일본처럼 과학 기술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예측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의 탈원전은 오랫동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지지해온 사람에 의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한다’는 아베 총리의 방침과 대칭점에 있는 발언이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후속 기자회견에서 원전에 관한 기존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오후에는 20분 정도 아키히토 일왕을 예방한 뒤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2시간가량 이어진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메르켈 총리를 ‘앙겔라’로 부르며 친근함을 보인 아베 총리는 정권의 외교·안보 이념인 적극적 평화주의를 강조하는 한편 일방적 현상변경 반대, 법의 지배 등을 거론하며 사실상 중국을 견제했다. 이날 양국 정상은 우크라이나 정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확대 개편, 대테러 대책 등에 대한 공조 방침을 확인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일본의 과학기술 관련 연구시설을 방문해 로봇과 태양전지 등 첨단 기술을 둘러보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도쿄 일본미래과학관을 찾아 모리 마모루 관장의 안내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로봇 ‘아시모’를 만났다. 메르켈 총리는 아시모가 “총리는 축구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영어로 말을 건네고 공을 차고 달리자 박수를 치며 웃었다. 또 태양전지 연구실, 도쿄대·이화학연구소 등을 잇달아 방문해 양국 간 과학기술 분야 협력 등을 논의했다. NHK 등 일본 언론들은 물리학 박사 출신인 메르켈 총리가 과학기술 정책에 높은 이해도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방일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일본의 여성 리더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도 만난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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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10 03:54 수정 2015-03-10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