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모(45)씨는 지난 연말 경기도 성남의 아파트를 팔고 서울 강남권 전세로 주거지를 옮겼다. 민씨는 여러 개의 외식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면서 연간 수억원을 벌어들이는 사업가다. 민씨는 전용면적 121㎡ 전세를 13억원에 계약했다. 서울 지역 웬만한 곳에서 집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민씨는 “사업 매출이 부진한 것을 보니 내수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였다”며 “부진한 경제지표를 보면서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 이런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돈은 많지만 집을 사지 않고 초고가 전세에 사는 ‘전세 귀족’이 늘고 있다. 학군 수요, 강남 재건축 이주 등도 이들이 전세살이를 선택하게 만들고 있지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꺾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9일 집계한 결과 지난해 4분기 서울 지역 10억원 이상 전세 거래는 총 218건이었다. 전년 동기 145건보다 50.3% 증가한 거래량이다. 지난해 3분기 104건과 비교하면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1∼2월 거래량도 111건으로 전년 동기 94건을 돌파했다. 10억원이 넘는 전세는 전체 전세 물량의 1% 수준인 1만여 가구로 추산된다.
서울의 초고가 아파트 전세 거래량 증가는 강남·서초가 이끌고 있다. 작년 4분기 10억원 이상 전세 거래는 강남이 154건으로 가장 많았다. 서초가 53건으로 뒤를 이었다. 두 자치구에서 이뤄진 거래가 전체의 95%를 차지했다.
가장 비쌌던 전세 아파트는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로 지난해 12월 19일 이 아파트 전용 165㎡ 전세가 16억6500만원에 거래됐다. 래미안퍼스티지(198㎡),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174㎡) 타워팰리스2차(164㎡), 대치동 동부센트레빌(161㎡) 등의 전셋값도 16억원을 기록했다.
10억원이 넘는 전세를 계약할 정도의 실수요자라면 강남권에서도 집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세를 선호한다. 부동산 업계는 집에 대한 투자금 회수 차원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지난해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집값이 상승했지만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집을 판 뒤 전세로 자산을 돌렸다는 의미다. 대치동 M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아파트 매매를 원하는 손님들은 집값이 오를지 떨어질지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많다”며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가 약해지면서 안정적으로 전세를 찾는 분이 많아졌다”고 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보증금 10억 넘는 ‘전세귀족’ 늘었다… 서울 작년 10억원 이상 전세 4분기에만 218건 1년새 50%↑
입력 2015-03-10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