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고민 물어보세요” 동네 ‘절세 도우미’ 떴다… 서울시 올 1월부터 ‘마을세무사’ 운영

입력 2015-03-10 02:07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A씨는 지난 1월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부동산이 조금이라도 들썩일 때 팔자는 생각이었다. 매매는 매끄럽게 진행됐다. 5∼6년 전 샀을 때보다 값이 올라 기분 좋게 계약서를 썼고 중도금도 일사천리로 받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복병을 만났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인 1가구 1주택자인데도 양도세가 부과됐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해하던 A씨는 지난달 중순 ‘마을세무사’를 찾았다.

담뱃세 인상으로 시작된 ‘세금 파동’이 연말정산을 거쳐 각종 공과금 인상 조짐으로 번지고 있다. 연말부터 여기저기서 세금 때문에 ‘악’ 소리 나는 요즘, 서울의 각 동네에 ‘세무 도우미’가 떴다. 복잡한 세법 탓에 안 낼 세금도 내는 소시민을 위해서 서울시는 지난 1월 도입한 마을세무사 제도를 도입했다. 저성장, 저금리 현실에서 세금에 더 민감해진 사람들이 마을세무사를 찾는데, 상담건수가 월 200건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다.

A씨가 빠진 ‘세금 함정’은 전입신고였다. 1가구 1주택자지만 주민등록상에는 부모 집에 함께 사는 걸로 기재돼 있었다. 이 때문에 1가구 2주택자로 분류돼 양도세가 부과된 것이다. 마을세무사의 조언에 따라 세대 분리를 해서 A씨는 양도세를 한 푼도 안 낼 수 있었다.

B씨도 1월에 집을 팔았다. 1500만원 정도 양도 차익도 얻었다. 남는 장사를 한 셈인데 마을세무사 박서영씨를 찾은 그는 울상이었다고 한다. 인테리어비로 2000만원을 쓴 집인데 양도세까지 내야 할 상황이라 이래저래 손해라는 거였다.

B씨는 마을세무사가 알려준 ‘팁’에 반색했다. 인테리어나 확장공사, 공인중개사 수수료 등은 양도세 계산 때 공제 대상이 된다는 거였다. 박 세무사는 “인테리어 공제를 받게 되면 양도 차익이 ‘0’이 돼 양도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귀띔했다.

세금을 아끼려다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주부 C씨의 아버지는 재산(2억원 상당)을 일찌감치 자녀 명의로 옮겨 놨다. 상속세를 덜어주려는 생각에서였는데 증여세가 부과됐다며 상담을 해왔다. 5억원까지는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 걸 모르고 미리 증여하는 바람에 안 내도 될 세금을 낸 것이다. 박 세무사는 “상속세 공제 기준을 알았다면 세금을 줄일 수 있었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세무사가 마을세무사에 자원했다. 그는 “작은아버지가 사업을 하는데 세법을 몰라 억울한 경우를 여러 번 당했다. 나조차 억울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해서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5개구에 마을세무사 도입 의사를 물었고, 희망한 20개 구(區)에서 이 제도를 운영 중이다. 신청하지 않은 송파·중랑·동대문·관악·중구는 자체적으로 요일별 세무상담을 하고 있다. 현재 세무사 143명이 마을세무사로 활동한다. 도입 첫 달인 1월에만 세무사 100명이 171건 상담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상담건수가 191건으로 증가했고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세법 지식과 세무 도움에 목마른 이가 많았던 것이다.

상담 내용의 절반 이상은 양도세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아파트를 매입한 신혼부부의 취득세, 퇴직자의 연말정산 절차, 주택 임대소득 과세 문제 등으로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상담자의 99%는 여성이나 주부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2∼13년 착오나 이중납부로 인한 세금 환급액은 3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그만큼 ‘모르고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박 세무사는 “대다수 납세자가 자신이 얼마나 세금을 내는지 정확히 모른다. 전문가를 찾아 본인이 납부할 세금이 무엇이고, 얼마인지 충분히 이해하는 게 절세의 첫걸음”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도 도입 초기여서 아직 상담 요청이 드문 지역도 많은데, 반응이 좋아 조만간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