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소령 A씨(37)는 2011년 1월 낯선 번호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여성 발신자는 실수로 번호를 잘못 눌러 미안하다며 자기 이름을 ‘다솔’이라고 소개했다. 호감을 느낀 A씨와 이 여성은 몇 차례 만나며 친분을 쌓아갔다.
같은 해 5월 느닷없이 다솔의 언니라는 사람이 이메일을 보냈다. “다솔이는 죽었고 나는 쌍둥이 언니 다희”라는 내용이었다. 연민을 느낀 A씨는 문자메시지나 모바일 메신저로 이번엔 다희와 친분을 이어갔다.
다희는 자신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이고 육군참모총장 조카라며 A씨에게 카지노 사업 등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A씨는 좋아하던 여성의 언니인 데다 이자수익을 얻을 기회라고 생각해 돈을 건넸다. 다희는 기한에 맞춰 이자와 원금을 주면서 점점 요구하는 금액을 늘려갔다. A씨는 2013년 8월∼지난해 2월 103차례 투자금 명목으로 7억5000여만원을 빌려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채무변제가 늦어졌다. 이자가 제때 들어오지 않았고 원금 상환도 2억5000만원이나 밀렸다. 독촉해도 답이 없자 A씨는 지난해 7월 다희를 고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다희라는 사람은 실재하지 않았다. 쌍둥이 동생도 없고, 변호사도 아니고, 군 장성 조카도 아니었다. 그동안 A씨와 연락한 여성은 송모(36)씨 한 명이었다. 1인2역으로 다솔과 다희 행세를 하며 A씨에게 투자를 권했던 송씨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송씨를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송씨는 A씨에게 받은 돈을 대부분 빚 갚는 데 썼다. 경찰은 “어린이집 원장이던 송씨가 2010년 어린이집을 확장하며 사채를 썼다 빚에 허덕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알고보니 사기女… 수억원 뜯긴 육군 소령
입력 2015-03-10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