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장관의 자격 ‘위장전입’

입력 2015-03-10 02:10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이수해야 할 ‘4대 필수과목’이 있다.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투기, 병역기피가 그것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한 가지만 택해야 한다면 단연 위장전입이다. 이는 기초 필수과목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공직 후보들에게 거의 빠지지 않고 따라다닌 것이 바로 위장전입이다.

초창기엔 상당수가 낙마했다. 김대중정부 때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의 인준안이 잇달아 부결됐고, 노무현정부 시절엔 이헌재 경제부총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이 퇴진했다. 이런 치명적 흠결이 사소한 흠집으로 변질된 건 이명박정부 들어서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자녀 교육 때문’이라며 5차례 위장전입을 시인하고도 당선돼 면죄부를 받았다는 생각 탓이다.

이때부터 ‘투기용’ 아닌 ‘교육용’ 위장전입은 면책됐다. 정운찬 총리와 수많은 장관들이 고개를 숙이며 청문회를 통과했다. 투기 의혹까지 겹친 일부만 사퇴했다. 법의 수호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헌법재판소장(이동흡) 법무부 장관(이귀남) 검찰총장(천성관 김준규 한상대) 국세청장(이현동) 경찰청장(조현오) 대법관(민일영 이인복) 중 다른 의혹이 제기된 이동흡 천성관 후보만 낙마했다.

박근혜정부도 다를 바 없다. 정홍원 총리,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그랬다. 심지어 주민등록업무를 총괄하는 강병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도 전력자다. 이번 2·17 개각에선 장관급 4명 모두 포함됐다.

‘무능한’ 대다수 국민은 이런 짓을 할 줄 모른다. 한데 ‘유능한’ 공직자들은 교육용 위장전입에 대해 털끝만큼도 죄의식이 없다. 사리사욕을 위해 타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는 범죄임에도 말이다.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유일호 국토교통부·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도 “송구스럽다”며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이게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아니면 위장전입을 합법화하든지.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