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형섭 (12) 아내, 내전 속에서 성경만으로 두 아이 한글 교육

입력 2015-03-10 02:21
첫딸 한나가 라이베리아에서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모습.

아내는 자신을 늘 ‘과부 후보생’이라고 불렀다. 내전이 소강상태로 접어들 때마다 기니에 가족을 두고 식량을 전하러 라이베리아에 수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말라리아나 풍토병의 위험에도 개의치 않고 오지를 돌아다녔고 차가 고장 나 연락이 두절된 채로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언제 사망·사고 소식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면 남편이요, 대문 밖에 나서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딸은 여덟 살 때, 아들은 다섯 살에 라이베리아로 와 현지인과 똑같이 자랐다. 내전 기간 현지인 학교에서는 학생보다 교사들 결석이 더 잦았다. 교사들은 학교에 올 택시비가 없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도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첫딸 한나가 학교에서 노는 게 지겹다며 책을 구해 달라고 했다. 어렵사리 책을 구해오면 금방 읽고 다른 책을 더 달라고 했다. 나중엔 읽을 책이라곤 성경책 밖에 남지 않았다. 한나는 그해 학교에서만 성경을 8번 읽었다.

아들도 성경을 읽으며 자랐다. 아내는 아들이 여섯 살 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집 안에서 한글을 가르쳤다. 교재는 성경이었다. 아내는 아들에게 “성경책 중 한 권을 택해 다 읽으면 갖고 싶은 것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자전거를 갖고 싶어 하던 아들은 자신이 성경책 중 유일하게 알고 있는 요한복음을 택했다.

요한복음 1장의 다섯 줄을 읽는데 보름이 걸렸다. 6개월 만에 완독한 아들은 한글도 깨치고 자전거를 얻을 수 있었다. 두 자녀 모두 하나님과 공부한 셈이다.

자녀들이 다니던 현지인 학교 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그러나 내전으로 수도관이 파괴돼 물이 공급되지 않자 화장실은 그야말로 오물통이 됐다. 딸은 학교에서 화장실을 안 가려고 하루 종일 굶었다고 했다. 매일 집에 오는 시간까지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다.

나는 두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선교지에 적응하느라 고생한 자녀들을 잘 챙기지 못해서다. 그러다 최근 한 의대 편입학을 위해 딸이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온 가족이 병에 걸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족 모두에게 주사를 놓은 뒤 자신의 팔에 주사하는 걸 보고 처음으로 의사가 돼 어머니께 주사를 놓아 드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전 기간에 동갑내기 한국인 친구를 말라리아로 떠나보낸 일, 아버지가 현지인 의사에게 맹장 수술을 잘못 받은 일, 약을 받기 위해 집으로 끝없이 찾아오는 병든 현지인들…. 이런 일을 겪으며 반드시 훌륭한 의사가 돼 아픈 이의 몸과 영혼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소망은 부모님께서 위대한 사명을 위해 젊음을 바치신 곳, 라이베리아에 의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훌륭한 삶은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고난을 배움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삶을 하나님께 내드리겠다는 딸의 마음이 기특하고 감격스러웠다. ‘선교사의 가족은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말이 있다. 나는 자녀들에게 최고의 것을 해 주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이 아이들에게 세상 무엇보다 값진 가치를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