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6호 골을 넣은 뒤 오른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는 세리머니는 마치 “내가 최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은 23세의 나이에 유럽축구계가 주목하는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중요한 사실은 그의 진화가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차붐’을 넘어라=손흥민은 9일(한국시간) 독일 파더보른의 벤텔러 아레나에서 열린 파더보른과의 2014-2015 분데스리가 24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팀이 1-0으로 앞서 있던 후반 39분 추가골을 터뜨렸다. 이어 추가시간에 쐐기골도 꽂아 넣어 레버쿠젠의 3대 0 완승을 이끌었다.
손흥민은 정규리그 9∼10호 골을 멀티골로 장식했다. 각종 대회를 통틀어서는 15∼16호 골로 자신의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계속 새로 써 나갔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 10골,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3골,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2골,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에서 1골을 넣었다.
손흥민은 레버쿠젠의 해결사로 손색이 없다. 정규리그에서 카림 벨라라비(9골)를 제치고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올랐고, 모든 대회를 통틀어서도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분데스리가 전체에서는 득점 공동 7위를 달리고 있다. 마인츠의 오카자키 신지(9골)를 뛰어넘어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아시아 선수들 가운데 정규리그 득점 1위다.
이제 관심은 손흥민이 ‘차붐’을 넘어설지에 쏠리고 있다. 차범근(62) 전 수원 삼성 감독은 1985-1986 시즌 레버쿠젠 소속으로 정규리그 17골, DFB 포칼 2골 등 총 19골을 뽑아내 독일에서 뛴 한국인 선수들 중 분데스리가 및 한 시즌 전체 최다골 기록을 갖고 있다.
손흥민이 남은 정규리그 10경기와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4골만 더하면 ‘차붐’을 뛰어넘게 된다.
◇기본기와 체력 겸비=2012년 아어민 베 당시 함부르크 감독은 “30세 프로 선수도 못하는 플레이를 18세인 손흥민이 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손흥민은 빨랐고, 정교했고, 골 감각이 탁월했다. 분데스리가 6년차를 맞은 손흥민은 한층 완숙해진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최근엔 오기로 덤비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기자 골이 쏟아지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후반 막판 곤잘로 카스트로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헤딩 패스를 전해주자 오른발 발리슛을 날려 추가골을 뽑아냈다. 이어 추가시간엔 아크서클 왼쪽으로 굴절돼 나온 공을 오른발로 절묘하게 감아 차 추가골을 터뜨렸다. 두 골 모두 참착함과 여유가 돋보였다.
손흥민은 누구보다 기본기가 탄탄하다. 함부르크로 축구 유학을 떠난 16세까지 아버지 손웅정 춘천FC 감독으로부터 기본기를 배웠다. 그 결과 초등학교 시절 이미 훌라후프를 벗어나지 않고 10분 넘게 리프팅할 정도로 공과 친해졌다. 손 감독은 “아들이 사춘기를 못 느낄 정도로 혹독하게 기본기 훈련을 시켰다”며 “전 세계에서 손흥민만큼 기본기를 배운 애가 없다”고 말했다.
손흥민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개인기에 체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2008년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함부르크로 유학을 떠난 손흥민은 가냘픈 소년이었다. 하지만 꾸준한 근력 운동으로 키 183㎝, 몸무게 78㎏의 당당한 체구를 자랑하게 됐다. 손흥민은 몸싸움에 자신감이 생겼고, 득점 행진에도 탄력이 붙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벌써 16골 미다스의 ‘손’… 손흥민, 파더보른전서 멀티골
입력 2015-03-10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