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거나 망하거나. 중박이 없다.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국영화의 최근 흥행 행보가 그렇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작품이 속속 나오는 반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막을 내리는 작품이 하나 둘이 아니다. 5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중박 영화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500만 돌파 영화가 여러 편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끊겼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2012년에는 ‘늑대소년’(665만), ‘타워’(518만)가 500만 관객을 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90만),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71만), ‘내 아내의 모든 것’(459만), ‘연가시’(451만), ‘건축학 개론’(411만), ‘댄싱퀸’(405만) 등 500만 관객에 육박한 영화도 여러 편 나왔다.
‘7번방의 선물’(1281만)과 ‘변호인’(1137만)이 흥행 돌풍을 일으킨 2013년에는 ‘설국열차’(934만), ‘관상’(913만)이 1000만 관객 돌파에는 아깝게 실패했지만 대박 영화가 4편이나 나왔다. 또 ‘베를린’(716만), ‘은밀하게 위대하게’(695만), ‘숨바꼭질’(560만), ‘더 테러 라이브’(558만), ‘감시자들’(550만) 등 500만 돌파 영화도 5편이 쏟아졌다. ‘신세계’(468만)와 ‘용의자’(413만)도 선전했다.
‘명량’이 1761만 관객으로 각종 흥행 기록을 경신한 지난해에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866만)과 ‘수상한 그녀’(865만)가 더불어 대박을 쳤지만 3편을 제외하면 500만을 돌파한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군도: 민란의 시대’(477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80만), ‘타짜-신의 손’(401만), ‘역린’(384만), ‘신의 한 수’(356만), ‘끝까지 간다’(345만) 등이 기대에 못 미쳤다.
‘국제시장’이 1400만 관객을 돌파한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이 설 연휴 관객몰이로 383만 명을 모았으나 외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 밀리면서 500만 관객 돌파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강남 1970’(219만), ‘오늘의 연애’(189만), ‘쎄시봉’(170만)도 실망스런 흥행 기록이다. 허삼관’(95만)은 100만 명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망했다.
2005년 ‘말아톤’(514만)을 시작으로 2006년 ‘투사부일체’(610만), 2007년 ‘화려한 휴가’(730만), 2008년 ‘추격자’(507만), 2009년 ‘전우치’(613만), 2010년 ‘아저씨’(628만), 2011년 ‘완득이’(531만)를 거쳐 2012·2013년까지 8년간 이어져 오던 500만 이상 관객 중박 영화가 지난해에 끊긴 것이다. 지난주 개봉된 ‘순수의 시대’와 12일 선보이는 ‘살인의뢰’가 중박 바통을 이을지 주목된다.
500만 이상 중박 영화의 실종은 건강하지 못한 한국영화계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재미가 있어야 흥행에 성공하겠지만 잘 되는 영화에만 우르르 몰려드는 관객 쏠림 현상도 문제다. 또 개봉 때 관객이 들지 않으면 입소문을 타기도 전에 금세 간판을 내려버리거나 상영시간을 조조 또는 심야로 배치하는 배급사와 극장 측의 행태도 한몫하고 있다.
한 영화사 홍보 관계자는 10일 “관객의 입맛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출연 배우의 사적인 문제를 빌미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악평을 퍼트리는 경우도 많아 마케팅 전략이 어렵다”며 “극장도 몇 년 전에는 개봉 후 입소문이 나기까지 2주일 정도는 기다려 줬는데 요즘은 가차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다양한 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대박이거나 쪽박이거나… 한국영화 ‘중박’ 실종사건
입력 2015-03-11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