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55)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는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김씨가 경찰에서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하고, 북한 원전(북한에서 발간된 서적)을 다수 갖고 있으며, 법원이 이적성을 인정한 단체 회원들과 교류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은 ‘정황’에 머물러 있다. 국보법을 적용해 기소하려면 ‘이적행위의 목적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 당국은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한 2차 압수수색도 검토 중이다.
◇연기는 모락모락…스모킹 건은?=경찰은 김씨가 조사 과정에서 북한에 우호적인 발언을 수차례 한 점을 주시하고 있다. 특히 “김일성만한 지도자가 없다”거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정부 발표를 못 믿겠다”는 식의 발언은 지나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가 대외 활동이나 저술에서도 이런 의사를 밝혔다면 국보법상 찬양·고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김씨의 통화내역 분석에서 옛 통합진보당과의 연결고리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적단체로 규정된 ‘우리민족연방제일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인사들과 수시로 연락한 사실이 포착됐다. 이 단체 간부 A씨는 이날 김씨를 만나겠다며 서울 종로경찰서에 찾아갔다가 취재진과 마주쳤다.
A씨는 기자들에게 “김씨가 잘못한 게 없다. 옳은 일을 했으니 격려하러 왔다”면서 “지구상에 (군사) 작전권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김씨가 도와달라고 계속 문자를 보냈지만 나도 이적으로 몰려 있어 돕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갖고 있던 ‘민족의 진로’(2003년 10월 출간)와 ‘영화예술론’은 2013년 8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자택에서도 압수돼 이적표현물로 판시된 서적이다. 당시 법원은 두 책에 대해 “북한 주장을 미화·찬양한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검찰과 경찰은 김씨의 ‘이적 목적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 책자들을 소지하게 된 경위와 목적을 철저히 분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적표현물로 볼 근거는 마련돼 있다”며 “경찰 수사를 지켜본 뒤 김씨가 이 책들을 왜 갖고 있는지, 판례에 나타나는 이적 목적에 해당하는지 등을 모두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의 진로’와 ‘영화예술론’=‘민족의 진로’는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규정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출간한 부정기 간행물이다. 이 전 의원 자택 옷장 서랍의 서류가방에서 다른 문건들과 함께 발견됐던 ‘민족의 진로’는 2002년 3월 출간된 36호다. 수원지법은 이 책의 성격을 “북한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 따라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과 지혜를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규정했다.
‘영화예술론’은 1973년 4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쓴 것으로, 영화를 ‘혁명과 건설의 강력한 사상적 무기’로 규정한 책이다. 이 전 의원은 이 책을 미니 CD에 담아 벽장 속 등산가방 안에 넣어 뒀었다. 경찰은 이와 함께 ‘민족 악기 총서’등 북한 원전 6점과 ‘전방위적으로 강화되는 침략적 한미동맹’ ‘동학과 주체사상의 만남’ 등 이적성이 의심되는 자료 24점을 외부 전문가 집단에 감정토록 의뢰했다.
◇‘이적 목적성’ 입증 가능할까=김씨의 국보법 위반 혐의 수사는 이미 본격화됐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이적표현물로 국보법 위반이 성립되려면 수사 당국이 이적행위의 목적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단순 발언이나 서적 소지만으로 이적행위의 목적까지 추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앞으로 검경 수사의 초점은 김씨의 경력과 지위, 이적표현물과 관련한 단체 가입 및 활동 여부 등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북한을 연구하는 석사과정에 있고 통일 관련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디지털 압수물 146점까지 면밀히 분석하고 입출금 내역도 들여다보는 중이다. 1차 압수수색은 국보법을 배제한 채 살인미수 등 혐의로 영장을 받아 진행됐다. 1차 압수품에서 이적성 관련 자료가 여럿 확보되자 경찰은 국보법 위반 혐의로 정식 영장을 받아 2차 압수수색을 벌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늦어도 13일까지는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황인호 이경원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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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09 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