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종(55)씨가 갖고 있던 ‘민족의 진로’와 ‘영화예술론’은 2013년 8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자택에서도 압수돼 이적표현물로 판시된 서적이다. 당시 법원은 두 책에 대해 “북한 주장을 미화·찬양한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김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점까지 다각도로 수사 중인 검찰과 경찰은 김씨의 ‘이적 목적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경은 8일 김씨가 이 책자들을 소지하게 된 경위와 목적 등을 철저히 분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미 검찰은 김씨의 습격 동기, 배후와 관련해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적표현물로 볼 근거는 마련돼 있다”며 “경찰 수사를 지켜본 뒤 김씨가 이 책들을 왜 가지고 있는지, 판례에 나타나는 이적 목적에 해당하는지 등을 모두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책 중 민족의 진로는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확정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출간한 부정기 간행물이다. 이 전 의원 자택 옷장 서랍의 서류가방에서 다른 문건들과 함께 발견됐던 민족의 진로는 2002년 3월 출간된 36호다. 수원지법은 이 책의 성격을 “북한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인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 따라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과 지혜를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규정했다.
‘영화예술론’은 1973년 4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쓴 것으로, 영화를 ‘혁명과 건설의 강력한 사상적 무기’로 규정한 책이다. 이 전 의원은 이 책을 미니 CD에 담아 벽장 속 등산가방 안주머니에 넣어 뒀었다.
북한의 대남 메시지와 통하는 유인물이 발견된 데 이어 이적표현물 소지까지 확인되면서 김씨의 국보법 위반 혐의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우리 법원은 이적표현물로 국보법 위반을 성립시키려면 수사 당국이 이적행위의 목적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단순한 소지만으로 이적행위의 목적까지 추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앞으로 검경 수사의 초점은 김씨의 경력과 지위, 이적표현물과 관련한 단체 가입·활동 여부 등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경찰은 서적들의 이적성을 확인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 집단에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대상에는 두 책 외에도 정치사상 강좌 유인물 등이 포함돼 있다. 방북 경력이 있는 김씨인 만큼 밀반입 가능성까지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김씨는 “북한을 연구하는 석사과정에 있고 통일 관련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휴대전화에서 삭제된 데이터를 복원하는 등 디지털 압수물 146점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하고 통화기록과 입출금 내역까지 들여다보는 중이다. 경찰은 국보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2차 압수수색도 검토 중이다. 경찰은 늦어도 13일까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이경원 황인호 기자
[美 대사 테러 이후] 김기종 자택서 압수한 서적은… 법원, 두 책 ‘北찬양·미화’ 분류
입력 2015-03-09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