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외 위기대응 능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원화 국채 등을 활용해 외국인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 역내 채권시장을 활성화해 단기자금 거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대외 안전지표로 외환보유고만 무조건 많이 쌓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유 비중이 큰 미국 재무부 채권(UST)의 활용도를 높이고 외부 충격에 대비해 다양한 완충장치를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
8일 외환 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원화 국채를 담보로 한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로 외국인 자금을 끌어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매조건부채권은 채권 발행자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되사는 조건으로 파는 채권을 말한다. 만기가 긴 국공채는 당장 현금화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담보로 단기자금을 융통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한·중·일 동북아 3국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면서 이를 아시아채권시장이니셔티브(ABMI)와 연계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ABMI는 아시아 외환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2003년부터 가동됐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금융안전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채권시장 활성화 방안은 안전성이 높은 국채를 담보로 한 자금거래로 아시아 금융시스템을 좀 더 역동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고 확충으로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홍보하는 것은 다소 수동적이다. 대외 충격이 발생하면 외국인 자금 유출 공포에 떠는 경험을 반복하기보다 우량자산으로 평가받는 국채를 활용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원화 채권 잔액은 101조1000억원에 달하지만, 올해 하반기로 예상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는 여전하다. 연구기관들은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미 국채와 한국 국채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고, 원화 강세 기대감이 하락해 원화 채권 보유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외환보유고를 통해 채권시장에서 추가 수익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지금처럼 미 재무부 채권만 사놓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도식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의 활용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금융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3623억7000만 달러인데 통화별로 보면 미 달러화 자산 비중이 58.3%(2013년 기준)에 달한다.
채권시장 활성화는 ‘원화 국제화’를 진전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원화 거래가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역외 원화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외국환거래규정 손질 논의를 같이 해야 한다. ‘위안화 국제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나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펼치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대응 수단이 부족하다. 원·위안화 직거래가 지난해 12월 시작됐지만 외환규제로 국내에만 직거래 시장이 있을 뿐 중국에는 개설되지 않았다.
채권시장을 통한 외국인 자금 확보 방안이 시행되려면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우선 비(非)기축통화인 데다 유동성이 많지 않은 원화가 국제적인 담보 기준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원화 거래 범위도 넓혀야 한다. 또 역외 거래를 터줬을 경우 우려되는 환투기 세력에 대처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단독] 외화 곳간 늘리기 다각화… 원화국채 카드 만지작
입력 2015-03-09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