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밥 논쟁’이 뜨겁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을 꺼내기 부담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시행령이 만들어져봐야겠지만, 현행 공무원행동강령을 준용하면 식대가 1인당 3만원을 넘으면 처벌받게 될 전망이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약속을 잡는 관용어다. 그런데 반복되는 밥자리가 부당한 청탁이 오가도록 윤리적 경계의 벽을 허무는 마취제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밥자리 자체가 ‘청탁의 장소’로 활용된 사례도 많다. 밥은 일종의 도덕적 무장해제를 시키는 매개였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의 또 다른 중요한 함의는 ‘시간’이다. 중요한 일을 하는 이의 시간과 정보와 귀를 밥을 사는 사람이 독점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그런 밥자리의 중요성 때문에 명사들의 경우 밥 한번 먹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투자가인 워런 버핏과의 3시간짜리 식사 경매가 22억∼36억원에 팔리고 있고,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과의 식사는 6억원에 팔린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차 한잔’ 마시는 기회도 수천만원에 팔렸다. 비싼 밥은 다 이유가 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무원이나 공공기관·공기업 종사자, 언론인 등이 할애하는 시간도 규제나 이권, 여론의 향배를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값어치가 작지 않다. 또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 시간에 다른 누구는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양쪽 당사자 중 어느 한쪽하고만 밥을 먹으면 그 자체가 ‘편파’일 수 있다. 밥이 그러할진대 ‘술 한잔’은?
김영란법 통과를 계기로 식사문화, 만남의 문화를 좀 가볍게 가져갔으면 좋겠다. 천편일률적인 접대문화 때문에 그동안 비싼 밥집들만 좋은 일 시켜온 측면도 없지 않다. 게다가 시간당 최저임금이 5580원인 사회에서 몇 만원짜리 밥은 결코 싼 밥이 아니다. 브랜드 커피가 부담돼 ‘싸구려 커피’만 마시는 청년층이 부지기수라는데.
손병호 차장 bhson@kmib.co.kr
[한마당-손병호] 몇 만원짜리 밥
입력 2015-03-09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