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안의 대학 ‘사내대학’] 월급 받으며 학위도 받고… 전문인력으로 큰다

입력 2015-04-20 02:59
서울 동작구에 있는 식품전문업체 SPC ‘식품과학대학’ 강의실에서 지난 2월 10일 수강생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사내대학은 2년간 5학기에 걸쳐 수업을 들으면 전문학사(2년)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 공과대학(반도체), KDB 금융대학(금융) 등 8개 사내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SPC 제공

‘70.7%’. 2013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다. 한때 대학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었다. 1970년대만 해도 대학생은 ‘지성인’이라는 특별대접을 받는 귀한 존재였다. 문민정부 이후 대학정원 자율화 정책으로 대학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현재 432개(사이버대학 포함)까지 늘었다. 대학생도 덩달아 증가해 지난해 기준 360만명을 넘었다. 이른바 ‘대학의 홍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아직도 고등학생 10명 중 3명은 졸업 후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학에 못 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는 판단에 안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문 직업교육을 받은 뒤 바로 취업한다는 취지로 세워진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도 ‘인기’다.

다만 ‘호모아카데미쿠스’라는 말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배우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학위가 중시되는 한국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회사 안의 대학인 ‘사내대학’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5년 삼성전자 공과대학을 시작으로 어느새 10년이 된 사내대학, 그 속살을 살펴봤다.

◇사내대학, 누구냐 넌?=사내대학은 고졸 근로자를 위해 기업이 회사 안에 설치한 대학을 말한다. 고등교육법에 따른 학교가 아니라 평생교육법 적용을 받아 평생교육기관으로 분류된다. 학교법인을 세우지 않고도 근로자 200명 이상 법인사업장은 교육부에 사내대학 설립을 신청할 수 있다. 해당 기업 근로자나 하도급·협력업체 직원 등이 입학 대상자가 된다.

정부는 점차 사내대학 관련 규제를 푸는 중이다. 지난해 발표한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중심 투자 활성화 대책’을 통해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사내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했다. 자신이 일하는 기업과 같은 직종이라면 다른 기업의 사내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다.

사내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2년제 전문대학이나 4년제 일반대학 졸업과 동등한 학위를 준다는 점이다. 비용은 기업이 전액 부담한다. 공짜로 공부해 학위까지 딸 수 있고, 기업은 전문인력을 키울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국내에는 8개 기업이 사내대학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기업 특성에 따라 금융부터 조선해양, 기계전기, 건설기술까지 학과와 강의 종류도 다르다.

지난 2월 10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SPC 식품과학대학을 찾아갔다. 정성민(30)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케이크 시트에 거품을 올리고 있었다. 동일한 악력으로 거품을 짜내는 게 핵심이란다. 정씨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 9시∼오후 8시 수업을 듣고 있다. 제빵 기술부터 커피·와인 이론과 세계 식(食)문화를 배웠다고 한다. 2년간 5학기 수업을 수강하면 전문학사(2년) 학위가 주어진다.

정씨는 “매장 제빵사로 일하면서 이론에 대한 부족함을 느꼈는데 사내대학에서 궁금증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며 “현장에서 일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동경제과학교에서 학위를 딴 뒤 SPC에 입사한 민경아(43·여)씨도 “빠르게 변하는 제빵 트렌드를 익히고 싶어서 지원했고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수한 학생에게는 해외 연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혜택이 다양해 이 사내대학은 평균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도는 상황이다.

◇‘불투명한’ 미래=안타깝게도 열 살이 된 사내대학의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고졸 근로자가 점점 줄어 입학생이 부족해지고 있어서다. 학사 이상의 직원을 뽑을 수도 있지만 학위를 제공하는 사내대학 본래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

모든 비용을 기업이 내다보니 부담도 만만치 않다. 모든 사내대학이 대기업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이유다. 우수한 인력이 더 절실한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인 셈이다.

학과가 1∼2개에 불과해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아직 사내대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낮다. 한 사내대학 재학생은 26일 “열심히 공부해 학위를 따도 외부에서 과연 일반대학과 동등한 졸업장으로 인정해줄지 의문”이라며 “일정이 빠듯해 상사 눈치를 보면서 다니는 학생도 많다”고 했다.

여기에다 교육받은 인력이 현장에서 배운 만큼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도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힌다. 한 사내대학 관계자는 “같은 비용을 투자한다면 차라리 고졸자보다 대졸자를 뽑는 게 낫지 않으냐는 의견도 많다”며 “사내대학이 직원 복지 차원을 넘어 정말 회사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