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아, 포즈를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김윤식)
"그래. 이 라인이 더 나을 것 같아."(김경식)
"알았어. 이렇게 하면 괜찮아?"(최지인)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 있는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선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발레 연습복을 입은 두 남자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카메라 앞에 선 발레리나는 아름다운 포즈를 선보였다.
세 사람의 직업은 무엇일까? 맞다, 국립발레단원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또 다른 직업이 있다. 형제 발레리노인 김경식(30)은 영상, 동생 윤식(26)은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고 있다. 발레리나 최지인(26)은 잡지와 화보 모델로 활동 중이다.
국립발레단은 단원들에게 본업인 발레 외에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무용수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은 편”이라며 “각자의 능력을 키워 은퇴 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발레단은 오는 9월 단원들이 직접 기획한 공연물을 무대에 올린다. 기획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안무가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다.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세 사람의 활동을 단순 취미 생활로 본다면 오산이다. 발레리노 형제는 지난해 한 가구회사와 콜라보레이션(공동작업)을 진행했다. 침대 위에서 포즈를 취한 김경식을 동생이 촬영했다. 국립발레단의 공연 프로그램 등에도 두 사람의 사진이 사용됐다. 최지인은 케이블채널의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인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에 출연한 뒤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관심이 사진으로 이어졌어요. 2012년 여름휴가 때 학원을 다녔습니다.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단원들을 취미처럼 찍었는데, 어느 순간 제 사진을 찾더라고요.”(김윤식)
“동생 때문에 사진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인터넷 강의 등으로 독학을 했어요. 영상은 사진과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구요.”(김경식)
단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무대 뒤 자신의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다. 발레단도 이들의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최지인은 다른 방법으로 모델의 길에 들어섰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하면서 함께 키운 꿈이 모델이었어요. 그런 저를 아는 동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하라고 용기를 줬어요. 강수진 단장도 ‘지금이 때’라며 응원하셨어요.”(최지인)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자신의 본업은 발레라는 걸 잊어 본적이 없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개의 꿈, 모두 놓지 않겠다=이들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명소도 많고 훌륭한 무용수들도 많아요. 찍을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죠.”(김윤식)
“저는 동생보다 좀 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앞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해서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거든요.”(김경식)
“발레리나의 장점으로 표현의 한계를 넘어선 모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최지인)
이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 무용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전했다.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은 놓지 말고 무조건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어요.(김경식)
“좋아하는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작년에 TV 프로그램에 안 나갔다면 후회할 뻔 했어요. 도전했다는 자체만으로 좋았거든요.”(최지인)
인터뷰 말미 김윤식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사진은 제가 발레를 할 때 영감을 주고, 발레가 고될 때 위로를 주는 대상이죠. 사진으로 힘들 때 위로해 주는 건 발레구요. 인터뷰 끝나면 사진 찍으러 갈 겁니다. 오늘 무용이 잘 안 됐거든요.”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사진 찍는 발레리노 모델 활동 발레리나… 국립발레단, 은퇴 빠른 단원들 제2인생 준비 지원
입력 2015-03-09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