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계선교협 대표회장 산돌중앙교회 신동우 목사, 35년간 80여개국 돌며 거룩한 사명 선교에 매진

입력 2015-03-09 02:22
신동우 산돌중앙교회 목사는 교회 개척부터 ‘선교하는 교회’를 강조하며 목회했다. 신 목사는 “선교는 작은 교회도 가능하다. 기도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 산돌중앙교회 담임 신동우(67) 목사는 한국교회 목회자 중 선교에 ‘미친’ 2명 중 한 명이다. 전주 안디옥교회 원로 이동휘 목사와 함께 ‘선교 광인(狂人)’으로 회자된다. 평신도 시절부터 성경읽기에 천착하며 바울의 선교를 품었고, 서울의 가장 낙후된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해 35년간 교회 재정 60% 이상을 선교비로 써왔다. 그동안 사용한 선교비만 170억 원. 땅 사서 교회당 짓고 주차장 넓히는 대신 전 세계 80여개국을 돌며 선교에 매진했다. 올해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대표회장을 맡은 신 목사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교회 개척 멤버가 7명이었어요. 구로공단 직원과 안양천변에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세계 선교하자고 했어요. 지구본을 보여주면서요.”

신 목사는 1980년 교회 개척 때부터 선교를 강조했다. 당시 교회 주보에 ‘오늘은 민족, 내일은 세계’란 캐치프레이즈를 썼고, “주님, 할 일이 많습니다” 하며 기도했다. 신자들은 가난했다. 비행기는커녕 국내 여행 한 번 못해본 사람들이었다. 신 목사는 그들에게 “하나님 사명을 감당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자. 우리 사명은 선교다. 다른 길은 없다”고 외쳤다.

“가난해도 나누자. 그게 선교의 시작이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1년 지나니 150명으로 성도들이 늘었고 2년 지나자 48인승 버스를 구입해 교인들을 실어왔어요.” 그는 선교에 힘썼더니 교회가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흥하려고 선교를 강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본말 전도’ ‘왜곡’이란 표현을 쓰면서 “교회 부흥을 위해 선교를 해야 한다는 말은 선교를 액세서리 취급하는 말”이라며 “부흥 여부와 상관없이 교회는 선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목사는 신학교 시절부터 지구본과 세계지도를 갖고 다니며 선교의 꿈을 품었다. 지구본은 안양대 신학대학원 교수 시절에도 즐겨 애용했다. 그는 지구본이나 세계 지도, 요즘엔 구글맵을 이용해 선교를 가슴에 품어보자고 했다.

산돌중앙교회는 개척 2년만인 82년, 리비아로 첫 선교사를 파송했다. 건설사 직원으로 파송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비즈니스 선교였다. 그러나 실패였다. 선교사는 1년 만에 귀국했다. 선교 전략과 방법의 부재였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신 목사는 시행착오를 절감하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선교학을 공부했다.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D.Min.)를 거치며 선교의 이론과 실제를 겸비했다. 이후 파송 선교사는 반드시 교회의 철학과 일치하는 사람을 선발했고 현재 4가정의 교회파송 선교사는 모두 산돌중앙교회 출신이다. 교회는 협력 선교사도 18명을 돕고 있고 19개 선교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특전사 출신인 신 목사는 군 복무 시절 33번의 낙하 경험도 갖고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 구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계를 누비는 데도 힘이 됐다. 수시로 선교지를 방문해 일선 선교사를 독려했고 직접 현장을 찾아 개척했다. 94년 소말리아 내전 때는 유니세프 전용기를 타고 당시 교회가 돕던 고아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대만의 교회를 통한 중국 복음화 구상과 네팔의 국제학교(산돌유초중고대학교) 설립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대만은 30년 동안 100회 이상을 다녔다. 10년 전 신자 20명에 불과했던 대만 타이중 모의당교회는 지금은 2000명으로 성장하며 선교하는 교회로 탈바꿈 했다. 네팔의 학교도 현지 고위직 공무원 자녀들이 선호하는 학교로 성장하며 기독교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도바울의 선교를 따라 평생 목회 여정을 달려온 그는 바울의 ‘가시’도 지녔다. 집만 벗어나면 불면증과 변비 증세가 발동하고, 최근엔 혈액 순환 이상으로 장시간 비행기 여행이 어렵다. 그래도 여전히 선교지를 간다. 11년 전엔 집회 도중 쓰러지기도 했다.

그는 은퇴를 3년 앞두고 있다. 은퇴하면 원로목사가 아니라 ‘선교목사’가 된다고 했다. 몇 해 전 당회에서 결정했고, 순회 선교사로 산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당회에 유언 같은 당부도 했다고 한다.

“해외에서 죽으면 시신을 가져오지 말고 현지에 묻어 달라 했어요. 그리고 비석에는 ‘복음을 위해 여기 잠들다’고 써 달라 했어요. 지구촌 모두 하나님의 나라잖아요. 어디서 죽든 하나님의 땅이니 그 자리에 묻혀야죠.”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