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20층엔 특실 18곳이 있다. 최고급 병실인 A실은 2곳인데 규모는 145㎡(약 44평) 정도다. ‘엘림’(2001호)과 ‘베데스다’(2006호)로 불리는 이 병실은 환자용 침실과 보호자 침실, 거실, 회의실로 나뉘어 있다. 복도에서 들어오는 문이 3개로 환자용 침실과 거실, 회의실 출입문이 따로 있다. B실은 12곳이 있으며 환자실과 거실로 나뉘는데 크기는 특실의 절반 수준이다. C실은 4곳으로 원룸 형태다.
병원장실에서 직접 관리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해 그동안 거물급 인사들이 이곳 특실을 많이 찾았다. 2001호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 전 중환자실로 옮겨지기 전까지 입원했던 병실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2010년 방한했을 당시 갑작스럽게 복통을 일으켜 이 병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불의의 테러로 입원한 적이 있다. 9년 전인 2006년 5월 20일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위한 지지연설을 하려고 단상에 오르다가 지충호씨로부터 커터 칼 공격을 받았다. 오른쪽 뺨에 11㎝ 길이의 자상을 입어 60바늘을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은 뒤 83㎡(약 25평) 규모인 2007호(특실 B)로 올라갔다. 이때 그 유명한 말이 바로 6·4지방선거의 대승을 이끈 “대전은요”였다.
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흉기 습격을 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현재 2001호실에 입원해 치료받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를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5일 오후 리퍼트 대사와 직접 통화하며 “몇 년 전 비슷한 경험을 한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지 이해가 된다”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을 나타냈다.
80여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에도 리퍼트 대사는 트위터에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남겼고, 잇따른 쾌유 기원에 “생큐”를 연발하는 여유를 보였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헌신하는 터프가이’라는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들로부터 ‘대인배’라는 찬사가 나오는 이유다. 특실에서 보여주고 있는 리퍼트의 ‘긍정 마인드’가 자칫 위기로 빠질 수 있었던 양국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한마당-김준동] ‘대인배’ 리퍼트
입력 2015-03-0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