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철우] 미국의 세계전략 바뀌고 있다

입력 2015-03-07 02:20

지난 2일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의 후원과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의 초청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이 있었다. 선거를 앞둔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여러모로 원했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주도권을 갖고자 애써온 베이너 의장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이뤄진 연설이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메스꺼운 외국 수반의 미 의회 연설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귀중하게 여겨왔고 이스라엘을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네타냐후 총리가 연설하는 동안 내내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지성을 욕보였으며, 이란의 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지식과 핵 확산 방지를 위한 미국의 광범위한 노력을 조롱하는 그의 빈정거림에 매우 슬펐다.” 민주당 최고지도자인 낸시 펠로시 의원의 표현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미국의 세계 전략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미국은 에너지원으로 엄청난 양의 중동 석유를 수입했다. 중동의 원유 수송로를 지키기 위한 군사적 비용도 지난 20여년간 8조 달러 이상이었다. 중동의 안정은 미국의 국가 이익에 사활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2007년 미국 내에서 셰일가스가 채굴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셰일가스 채굴 실용화로 에너지원의 자급화가 차츰 이뤄졌고, 2017년에는 셰일가스가 미국의 동맹국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더 이상 중동의 석유 수송로를 지키기 위해 국방비를 지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국의 국가 이익에 중동이 중요한 가치를 상실하게 된 셈이다. 이란과의 핵 협상을 마무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이란과의 핵 협상을 이스라엘이 반대하고 나선 점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세계 전략을 거스를 수는 없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유대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반대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미 의회 연설을 감행하는 악수를 두어 전체 미국인의 마음속에 반(反)유대 감정만을 깊숙하게 심어놓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유대인 정치인들을 포함해 58명의 의원이 의회 연설에 불참했고, 의회 연설을 놓고 찬반으로 갈려 감정의 골만 깊게 했다.

미국인들이 반유대 감정으로 각성하면 유대계의 정치력은 무너질 수도 있다. 지난해 예비선거에서 차기 연방 하원의장으로 유력시되던 공화당 원내대표 에릭 칸터 의원이 무명의 대학교수에게 석패하는 이변을 보면 알 수 있다.

며칠 전 미 국무부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셔먼 차관 발언의 이면에는 중국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이 상실되었고, 유럽 경제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때 아·태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아시아 재편전략이 한·일 간 민족감정과 과거사 문제로 지연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이 과거사를 이유로 계속 중국에 기울고 일본과 불화를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한·미동맹에 금이 가고, 미국으로부터 제공되던 한국에 대한 안전보장을 기대하기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정부가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유연하게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한다.

이철우 공주대 객원교수·한미공공정책委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