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자락을 스쳐 지나온 바람은 아직 추위를 머금고 있으나 요 며칠 얼굴에 부서진 햇살엔 봄기운이 가득하다. 속담에 ‘봄볕은 며느리 쬐이고 가을볕은 딸 쬐인다’라 했으니 무심코 민낯으로 햇살을 즐길 순 없을 듯하다. 이는 가을철에 비해 건조한 봄철엔 대기 중 수분에 의해 분산되는 자외선 양이 줄게 되어 지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이 상대적으로 많아 피부 관련 색소질환 유발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햇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면 생기는 동심원의 물결파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고 이를 파동이라 한다. 물결과 같은 파동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생기는 물결 간의 간격을 파장이라 부른다. 햇빛은 파장이 짧은 자외선(10∼380nm), 중간의 가시광선(380∼760nm) 그리고 긴 파장의 적외선(760nm∼1mm) 등 모든 파장의 빛을 포함하고 있다. 무지갯빛 가시광선 덕에 우리의 눈은 사물을 분별할 수 있고, 식물은 이를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영양분)를 만들어 지구 생태계에 제공한다.
파장의 길고 짧음으로 인해 빛은 사물 통과 시 굴절되는 정도가 조금씩 다르다. 자동차의 크기가 클수록 회전 반경이 커지는 것과 같이 가시광선 중 파장이 가장 긴 빨강색이 가장 적게 굴절하고 단파장인 보라색이 제일 많이 굴절한다. 이러한 연유로 백색의 햇살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화려한 스펙트럼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굴절률이 가장 큰 보라색이 아래 나타나고 빨강색이 맨 위쪽에 자리한다. 공기 중 물방울이 프리즘 역할을 해 나타나는 일반적인 무지개의 7가지 색깔도 같은 순서로 나타난다.
프리즘은 빛의 본질을 분별하는 중요 도구이다. 그러기에 아무 물체나 프리즘이 될 수 없다. 프리즘이 될 수 있는 물체는 그 굴절률이 공기가 지닌 굴절률과 달라야 하고, 2개 이상의 광학적 평면을 지니며 적어도 한 쌍의 면이 평행하지 않은 투명 구조체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프리즘도 구성원 각각의 고유한 본질과 차이를 분별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모두 펼쳐낼 수 있는 투명성을 지녀야 한다. 이미 옆에 자리한 따사로운 봄, 그 햇살 아래 보다 투명한 사회적 프리즘으로 아름답게 투영된 우리 일상이 펼쳐지길 꿈꾼다.
노태호(KEI 글로벌전략센터장)
[사이언스 토크] 프리즘과 본질
입력 2015-03-0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