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퍼트 美 대사 테러-행사 현장 문제점] 관례대로 한 ‘경호’… 결과는 뻥 뚫려

입력 2015-03-06 02:41
김기종씨가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뒷모습이 CCTV에 찍혔다. 종로경찰서 제공

마크 리퍼트(42)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으로 주요 외교 인사 경호체계에 허점이 드러났다. 경찰과 대사관 경호팀은 관례대로 경비·경호 활동을 벌였지만 그 틈을 비집은 전례 없는 테러에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부랴부랴 리퍼트 대사를 요인 경호 대상으로 지정했다.

리퍼트 대사는 5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공격당했다.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55)씨는 중앙 헤드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에게 다가가 목을 잡아 쓰러뜨리고 흉기를 수차례 휘둘렀다. 이 현장에 경찰 경호인력은 없었다. 경찰 정보관 2명과 공식 수행통역 요원인 외사경찰 1명만 있었다.

평소 미 대사 경호는 대사관 보안과 인력이 맡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대사 경호는 대사관 측에서 요청했을 때만 지원한다. 미 대사관은 보안을 이유로 대사 일정을 좀처럼 사전에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대사관은 이날 행사와 관련해 경호나 경비 지원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자체적으로 세종문화회관 주변에 기동대 1개 제대 25명을 배치했다. 한·미 연합훈련 반대 분위기 등을 고려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행사장 안에서 일어난 사태에는 대처하지 못했다.

그동안 미 대사를 비롯해 외국사절이 요인 보호 대상으로 지정된 적은 없었다. 현재 요인 보호 대상은 3부 요인인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주요 과학자 등 내국인 수십명이다. 이 대상은 보통 경찰청 요인보호심의위원회에서 정한다. 장관급 이상 외빈은 경찰청장이 직접 지정할 수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사건 발생 2시간20분 뒤인 오전 10시 리퍼트 대사를 요인 경호 대상으로 지정했다. 경찰관 4명을 대사에게, 3명을 대사 부인에게 붙여 경호하게 했다.

미 대사관의 자체 경호와 행사 주최 측 보안도 허술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우발상황에 대비한 경비 조치와 달리 경호 증강 조치는 각국 상호주의에 기초한 외교상 관례와 독자적 외교활동 보장 기조에 따라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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