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법과 윤리의 불일치

입력 2015-03-07 02:48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는 62년 만에 간통죄 처벌규정 폐지를 결정했다.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가 결정의 이유로 작용했다는 점도 보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는 법적 규정이 우리의 양심 혹은 윤리적 사고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환자를 상담할 때 부부갈등으로 진료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혼을 고려하는 상대에게 필자가 늘 하는 조언이 있는데, 진실과 법적 인정은 다르다는 점이다. 아무 증거도 없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법적 분쟁에서 불리하다. 그러므로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보다 법적인 인정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하고 변호사에게 자기가 믿는 진실이 법적으로 인정이 되는지 잘 확인받으라고 권한다. 이렇듯 법과 현실은 똑같지 않다. 다른 비유를 하나 더 들자면 법적 기준이 있어도 늘 적용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무단횡단의 경우 법에 명시된 잘못이며, 과태료를 청구할 수 있는 잘못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단횡단이 전혀 없어지지는 않는다. 경찰이 없으면 법을 어기기도 하고, 심지어 경찰이 잘못을 눈감아주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법은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긴 하지만 실생활에서의 적용은 원리원칙대로는 아닌 것이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그리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 것도 법과 현실의 차이에 따른다.

성경에서 바리새인은 율법을 원리원칙대로 준수하려는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법을 잘 지키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위선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였다. 게다가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기까지 하였다.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는 것에 대해 바리새인 등이 지적을 하면 예수님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다”(마 19:8)는 말씀으로 응수하였다. 사람들은 율법의 문자 그대로를 지키는 여부에 대해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규정의 본래 의미를 고려하셨고 본래 의미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를 지키는 것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장하신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 중 법 규정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개정이 가능한 것이다. 법은 진리가 아니고 현실과도 다소 동떨어져 있다.

이러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문자적인 규정으로 보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성경은 항상 원칙대로 실천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우리는 예전처럼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고 여성들이 성전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지도 않는다. 어떤 이는 안식일 개념을 주일로 날짜만 옮겼을 뿐이라고 여겨서 주일을 안식일 개념으로 지켜내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님 부활 이후로 안식일이 다만 날짜만 바뀐 게 아니라 기존의 안식일을 폐하였다고 알아야 한다. 안식일의 정신은 주일로 많이 치환되긴 했지만 단순히 날짜만 바뀐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구약 레위기에 대해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레위기에서 제한하는 많은 행위들은 ‘부정하게 만드는’ 다양한 행위다. 이 많은 규정을 시대와 상황의 배경이 다른 우리에게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성경을 오히려 왜곡하는 것이다. 레위기의 율법들은 우리가 하는 일부 행동이 부정하다는, 즉 ‘더럽다’는 점을 일깨워주며 이러한 부정함의 인식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존재론적 더러움 혹은 근본적인 죄의식과 연결된다. 달리 말하자면 레위기는 손 씻기의 실천을 못해서 생기는 작은 더러움이라도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보며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더러움 혹은 죄의식을 직면시킨다. 이러한 핵심을 붙잡으면 문자적인 규정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