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결합한 디지털 기술은 감시의 수단”…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 ‘심리정치’ 펴내

입력 2015-03-06 02:42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을 통해 현대 사회와 현대인의 문제를 날카롭고 독창적인 시각과 짧고 우아한 문체로 진단해온 한병철(사진) 베를린예술대학 교수가 ‘심리정치’(문학과지성사)를 새로 선보였다.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과 권력의 지배 방식을 ‘심리정치’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디지털 심리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핵심 주장 아래 디지털 기술이 실은 감시의 수단이었음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한 교수는 책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등을 대상으로 놓고 자유, 커뮤니케이션, 정보, 속도 등 그동안 디지털 기술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거의 모든 특성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한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처음에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매체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초기의 열광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음이 오늘에 와서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무제한의 자유와 커뮤니케이션을 약속한 스마트폰이나 페이스북을 효과적인 감시 도구로, 디지털 심리정치의 수단으로 재규정하고 이들을 통해 확보된 디지털 시각은 “모든 각도에서의 감시를 가능케 하며, 시점이 있는 아날로그 시각과 달리 인간의 심리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고 비판했다.

빅데이터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빅데이터는 개인의 심리 지도뿐만 아니라 집단적 심리 지도, 더 나아가 무의식의 심리 지도까지 작성할 수 있게 해준다”면서 “이로써 심리를 무의식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훤히 비추고 착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아날로그적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 인구 통계를 예로 들면서 “인구 통계는 주민의 심리 지도 작성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심리의 비밀을 밝혀주지 않는다”며 “그 점에서 통계는 빅데이터와 구별된다”고 덧붙였다. 빅데이터 비판은 감시의 강화라는 측면을 넘어 “인간의 종말, 자유의지의 종말”이라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 인간 자체가 측정하고 조종할 수 있는 ‘사물’이 되었으며 자유로운 결정은 미리 정해져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선택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책에서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기술이 권력과 통치, 착취, 자유 등의 형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보여준다. 그는 강제의 형식이 외적 강제나 타인의 억압에서 내적 강제와 자기 강제로 바뀌었으며, 이것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기분과 감정에 대한 접근과 통제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 결과 “인간은 어느새 새로운 파놉티콘(원형감옥), 더 효율적인 파놉티콘으로 들어와 버렸다”고 진단한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