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달자] 대학 등록금

입력 2015-03-06 02:20

후배 하나가 아들 등록금을 겨우 끝냈다고 하면서 한숨을 지었다. 그 한숨의 끝이 내 안에 아직 뜨겁게 남아 있는 듯하다. 어디 후배 하나뿐이겠는가. 이번에도 마음 졸이며 겨우겨우 아들의 손에 쥐어준 등록금이 부지기수 아니겠는가.

이제는 은행의 작은 박스 안에서 등록금이 한순간 들어가지만, 나는 등록금이라는 말에 늘 떠올리는 옛날 그림이 남아 있다. 1949년 아버지는 아들을 청주대학에 보냈다. 아버지 친구 양씨 아저씨도 아들을 청주대학에 보냈다. 아버지 아들은 등록금을 할아버지가 내주었고 농부였던 양씨 아저씨는 목숨 같은 소를 팔았다. 모든 식구의 희망이었고 재산 1호였던 소를 팔아 그 돈을 아들의 손에 쥐어주면서 양씨 아저씨가 말했다. “얘야, 너는 나같이 살지 마라. 무지렁이 같은 이 애비같이 살지 말고 세상에 나가 사람대접을 받아라.” 양씨 아저씨는 아내와 열손가락이 닳도록 일하고 아들은 대학을 졸업했다. 아버지에게 적어도 천 번은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의 아들은 그 다음해 전쟁터에서 죽었고, 양씨 아저씨 아들은 이 나라를 오늘의 선진국으로 만든 주역이 되었다. 오늘의 한국을 만든 사람 중에 양씨 아저씨 같이 소를 팔아 자식을 공부시킨 이 땅의 아버지가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 영화 ‘국제시장’보다 더 큰 감동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시골에선 소 한 마리가 재산의 전부인 사람들이 많다. 그 재산 1호를 팔아 자식 공부를 시킨 아버지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밑거름이다. 그렇다고 오늘의 아버지가 다르지 않다. 담배를 끊으려는 가장 절실한 이유는 건강이 아니라 자식이라는 말을 최근에도 들었다. 그보다 절실한 게 또 있으랴. 박목월 선생님의 시 ‘가정’에는 ‘세상에는 아버지라는 슬픈 이름이 존재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아버지가 아니라도 공감이 크다. “나같이 살지 마라”라는 말, 아버지에겐 기가 탁 막히는 말이다. 어머니 이야기도 끝이 없지만 아버지에 대한, 가족 희생에 대한 진심은 오늘의 석유보다 더 값진 피가 아니겠는가.

신달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