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역명’ 개정 서명운동 김상호 교수 “주민들도 코엑스역 예상… 불만 대단”

입력 2015-03-06 02:53
김상호 한양대 연구교수가 5일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 공사장 앞에서 역명개정 서명을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교수는 “역명을 일개 사찰명으로 하면 향후 이 지역에 들어서는 인프라 시설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허란 인턴기자

“봉은사역은 절대 안 됩니다. 동네 사람들의 불만이 대단해요. 지난해 9월 역명이 학당골역이 된다고 해서 반대서명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지난 1월 느닷없이 역명이 봉은사가 된다고 하더군요. 학당골역은 바로 옆 정거장 이야기였어요. 주민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당한 거죠.”

1996년부터 서울 삼성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상호(75) 한양대 연구교수는 봉은사역명 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포스코엔지니어링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생각해서라도 역명을 ‘삼성코엑스’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날 하루에만 188명의 서명을 받았다.

김 교수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주민 대다수는 코엑스역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코엑스는 이 지역의 대표적 공공시설 아니냐”면서 “그런데 학당골역이 된다는 소문이 퍼졌고 반대운동을 벌였는데 서울시가 봉은사역으로 결정했다니 얼마나 황당했겠나. 역명은 삼성역처럼 통합적 명칭으로 해야지 일개 사찰명으로 하면 사회통합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조선시대에 이 동네가 봉은사 마을로 불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것”이라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지명이 봉은사라는 불교계의 주장은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하철 9호선은 향후 강남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국제적인 지명을 사용해야 한다”면서 “옛 지명은 역사나 지리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필요하지 미래를 내다보고 살아가는 서울 시민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문제의 지하철역이 있는 영동대로는 폭이 60m인 강남의 대표도로입니다. 현대자동차 신사옥 등 인프라 시설이 조만간 들어서는 데 봉은사라는 일개 사찰명으로 그 거대한 콘텐츠를 어떻게 담아내겠어요? 사찰의 유래를 그렇게 알리고 싶으면 역 근처에 현판이나 비석을 세워 소개하면 되잖아요.”

김 교수는 98년 서울 능인선원에서 불교를 접했다. 교리에 심취돼 2년 과정의 동산불교대학에서 공부까지 했다. 조계종 웰다잉(Well Dying) 강사 과정도 수료했다. 그는 자격시험을 통과해 준 승려인 법사·포교사 신분을 갖고 있다.

그는 봉은사가 사찰명을 역 이름에 넣기 위해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한국불교 특유의 인식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국불교는 국가를 지켜온 종교, 호국불교(護國佛敎)라는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면서 “이 때문에 일개 사찰명에 불과한데도 대표성과 공공성이 있다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매년 1월 1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다는 김 교수는 “역명 교체를 위한 서명 작업은 서울의 이미지나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한 애국적 차원이지 봉은사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면서 “한국은 물론 동북아지역에 널리 알려진 코엑스라는 이름을 부각시켜야 외국인도 많이 찾고 그 옆에 있는 봉은사도 혜택을 보고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들어갈 방침이다. 김 교수는 “서울시의 정책은 형평성과 균형성, 지역 위상과 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박 시장은 자신의 지지기반만 생각하지 말고 서울시와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주민들의 생각은 고려하지도 않고 계속 봉은사역을 고수한다면 행정소송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가 역명을 바꿔 달라며 제출한 진정서는 삼성동 주민센터를 거쳐 서울시지명위원회에 올라가 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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