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은그릇 절도를 용서받고 점차 새사람이 된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거두고 이웃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눈다. 2012년 개봉된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역을 했던 호주 배우 휴 잭먼의 삶도 개심 후의 장발장과 비슷하다. 빈곤퇴치, 재난지원, 비정부기구 및 빈곤국 아동 후원, 거액 기부 등 국제적 선행에 앞장섰다. 2013년 한국을 찾았을 때는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잡지 ‘빅 이슈’ 표지모델도 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맨으로도 널리 알려진 세계적 스타임에도 늘 낮은 곳의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일까. 미국 포브스지는 2013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았다.
지난달 말 대한민국의 장발장들을 위한 의미 있는 일 두 가지가 이뤄졌다. 국민들의 관심이 ‘간통죄 위헌’ 결정에 쏠린 26일 헌법재판소는 또 하나의 보도자료를 냈다. 상습적인 생계형 절도범을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장발장법’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간통죄 위헌보다 훨씬 의미 있는 뉴스였다. 70억원 횡령 혐의의 유병언 아들이 징역 3년을 선고받는데, 분식집에 들어가 동전이 든 저금통과 라면 10개를 훔쳤다고 3년6개월의 실형을 사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장발장법 폐지 하루 전인 2월25일, 무이자 무담보로 벌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이 출범했다. 은행은 벌금형을 받은 저소득층과 소년소녀가장 등에게 벌금액만큼 대출해준다. 대부분 도로교통법 같은 기초질서 위반자들임에도 100만∼200만원의 벌금을 못 내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매년 4만명이 넘는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은행에는 며칠 만에 수천만원이 모였고, 지난 3일 처음으로 4명에게 650만원을 지원했다. 두 사안을 잇는 바탕은 약자에 대한 배려, 즉 인권이다. 가난이 곧 형벌이어서는 안 된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장발장을 위하여
입력 2015-03-06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