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유럽의 영화평론가들이 뽑은 영화사 최고의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Modern Times)’였다. 공장에서 오직 나사 조이는 일만 반복하다 신경쇠약에 걸린 주인공 찰리가 빵을 훔치다 들킨 고아 소녀와 함께 희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영화는 담고 있었다. 유럽의 평론가들이 ‘모던 타임스’를 최고의 영화로 꼽은 이유는 산업사회 속 인간소외라는 현실의 무거운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 찰리의 몸개그를 통해 관객을 끊임없이 웃게 만드는 슬랩스틱 코미디 요소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슬프고 비참한 현실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코미디 형식을 전문용어로는 희비극(喜悲劇·tragicomedy)이라 부른다.
김성호 감독의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바바라 오코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 만든 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희비극이다. 이 영화가 전면에 내세운 비극적 상황은 부서진 가족과 가난의 현실을 통해 드러난다. 피자 가게를 운영하던 아빠는 파산한 채 홀연 집을 나가버리고 엄마(강혜정)는 폐차 직전의 미니 승합차 속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자신이 일하는 고급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어린 아들을 목욕시키는 장면은 우습지만 주인공 가족의 가난한 형편을 대변한다.
한편 영화의 희극적 상황은 열 살 먹은 딸 지소(이레)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족의 편안한 잠자리와 자신의 생일파티를 위한 집을 구할 생각에 골몰하던 중 ‘평당 500만원’이라고 적힌 부동산 광고를 보고 ‘평당이라는 동네에 있는 500만원 가격의 집’을 사기 위해 부자 노부인(김혜자)의 개를 훔칠 황당한 전략을 구사한다. 채플린이 순진한 어린 아이의 행동으로 관객을 웃겼다면 이번엔 어린 배우들이 어른 흉내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이다. 결국 노부인에게 사실을 말하고 개를 돌려주려는 지소의 행동은 어린 아이의 순수하고 착함 그대로지만 말이다.
영화는 가난이 주는 슬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보다 슬픈 것은 가족의 상실이며 불화임을 아울러 보여준다. 노부인이 자신의 유산을 애완견에게 물려주려 했던 것이나 그 과정에서 불거진 조카의 재산 빼돌리기 음모의 근저에는 모두 화가였던 아들과의 갈등과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난한 어린 아이를 통해 부자 노부인이 삶과 사랑을 회복한다는 설정은 진부해보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퇴색할 수 없다. 노숙자 생활을 하는 대포(최민수)가 아빠 없는 지소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서로가 잃어버린 가족의 빈 공간을 채워줌으로써 가난에 대항할 힘이 가족에게 있음을 뜻하는 일이다.
‘모던 타임스’는 가난한 두 남녀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함께 꿈꿀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세상 살기가 어려울수록 힘이 되는 가족이 필요하다. 교회는 가난과 상실의 고통 가운데 있는 누군가의 가족이 될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6∼17)
강진구(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 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가난해도 행복을 꿈꿀 수 있는 가족
입력 2015-03-07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