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7일 아버지는 해냈다. 기어이 해낸 것이다. 100m만 가면 이탈리아 국경이 나오는 지중해 프랑스의 한적한 해변도시 멍통(Menton)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한 남자의 품으로 두 딸이 파고들었다. 지켜보던 아내는 감격에 겨워 울었고, 사람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 속에서도 딸들은 좀체 아빠의 품에서 떠날 줄 몰랐다.
방송사 리포터는 작은 도시의 떠들썩한 이슈를 취재했고, 뒤이어 현장에서 함께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있던 나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다. 나는 그저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겠느냐”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무엇보다 두 아이의 표정이 애틋했다. 한 달 만에 만난 아빠는 지쳐 보였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딸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 두 딸의 아버지다. 그러나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한 달 전, 조는 프랑스 북부에서 휠체어를 끌고 도로에 나섰다. 인생의 절벽에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위해서였다. 나약해진 몸과 마음으로는 가정은커녕 자신조차 온전히 지킬 수 없었다.
평범한 가장이지만 장애를 가진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는 오직 두 팔을 의지한 채 프랑스를 종단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찬란한 도전이었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 모습을 보이기 위한 멋진 방법이었다. 뿐만 아니다. 조의 친구들은 친구의 도전에 감명받아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 후원 행사도 열었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 걱정 속에 그는 끝까지 인내하며 사투를 벌였다.
“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면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도 나는 묵묵히 경주를 이어나갔습니다.”
프랑스의 겨울 날씨는 예측 불가능하다. 자욱한 안개가 세상을 뒤엎는가 하면 며칠 동안 종일 비만 내릴 때도 있다. 남부에서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태양에 피부가 따가워지기도 한다. 가장 힘든 건 바람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행자들의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미게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해주는 것들은 역시 사랑이다.
“나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경주를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경주는 그들과 함께 이룬 성과입니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언제부턴가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외로워하며, 방황을 한다. 어쩌면 조도 그랬을지 모른다. 언제고 마음 따뜻하게 되돌아 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인 가족인데, 그에겐 그 행복이 혹 자기 때문에 깨지지 않을까 염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그랬던가? 행복한 가족은 일찍 온 천국이라고.
아버지의 이름이다.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가 프랑스를 휠체어로 누비며 인간 승리를 거둔 원동력 말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과 6장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설파했다. 가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값진 선물이다. 그에게는 비록 장애가 있었지만 또한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 위에서의 시련을 오히려 기쁨으로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돌아갈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조의 도전은 대단한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 그 용기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사랑의 기저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자리해 있다.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상황을 해석하고 원인의 원인을 계속해서 파헤쳐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45) 아버지는 사랑이다-프랑스 한적한 해변도시 멍통에서
입력 2015-03-07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