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박강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풍경

입력 2015-03-07 02:49
차를 타려고 집 앞으로 나오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 빛깔이 짙푸른 코발트색이다. 차마 지나치기 아까워 휴대폰 카메라에 담아 넣었다. 언제부터인가 황사니 미세먼지니 해서 맑은 하늘 한번 보기 힘들었는데, 큰 행운이라도 만난 듯 즐겁다. 쪽빛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난데없이 냇가에서 손빨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유년 시절, 봄 햇살이 말린 국화꽃을 넣어 바른 한지 문창살을 두드릴 때면 어머니는 고만고만한 우리 자매들을 데리고 지금의 세검정 지점쯤에서 자하문 밖으로 빨래를 하러 가시곤 했다. 하늘은 높고 이름 모를 새들은 나뭇가지 위를 날아다니며 쪼로롱, 쪼로롱 노래 부르고 시냇물은 어찌나 맑고 투명했던지…. 방망이로 신나게 두드려 빤 이불호청이며 옷가지들이 나무 삭정이를 주워 지핀 군불 위 솥에 팍팍 삶기어 시원스레 헹궈져, 따가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너른 바위 위에서 뽀송하게 말라질 무렵이면 짧은 해는 어느새 산 너머로 기울곤 했다.

더 빠른 지름길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일부러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마을을 돌아오는 코스로 우리 자매들을 이끄셨다. 아마도 힘겨운 살림살이 중 유일한 나들이였던 빨래 길에 자신에게도 즐거움이 되고 딸들에게도 탱자 향기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어머니의 깊은 배려였던 것이다. 그 마음을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어선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으니 철들기가 참 어렵구나 싶다.

황홀하던 그 탱자 향기는 수십년이 지난 내 코끝에 아직도 남아 있으니 어머니의 배려 깊은 뜻은 적중하고도 남았다. 창 밖 산기슭은 온통 봄 빛깔이다. 오늘은 계절의 변화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시려는지 묵상해보고 싶다. 이미 오래전 천국으로 이주해 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봄의 길목이다.

박강월(수필가, 주부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