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의 국회 통과로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때문에 수사선상에 오를 잠재적 범죄자가 대폭 늘었다. 부정부패 감시자 역할을 자임해온 시민사회단체의 감시 범위, 더 나아가 고소·고발 대상이 크게 늘었다는 의미다. 시민단체는 ‘제5부’라 불릴 만큼 공적 영역에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선 제외돼 있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시민단체가 고발장을 내서 수사가 시작되는 수순은 일종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김영란법은 공무원은 물론 언론과 사립학교 직원 등으로 공적 영역의 개념과 대상을 확장했다. 여기에 금품이 오간 사실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해 직무 관련성 고민도 덜게 했다. 이는 김영란법에 따라 수사에 나설 검찰·경찰 못지않게 시민단체 역시 과거보다 훨씬 날이 선 ‘고발’ 무기를 갖추게 됐다는 뜻이다. ‘고발공화국’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슈 중 시민단체의 고발이 없었던 사례는 찾기 어렵다. 일부의 ‘묻지마 고발’ 남발로 고소·고발 사건은 해마다 늘어난 반면 관련 기소율은 낮아지고 있다. 2004년 28.7%였던 고소·고발 사건 기소율이 2013년에는 20.8%로 뚝 떨어졌다.
시민단체가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정한 부패 감시자 역할을 수행할지, 이슈 생산용 고발 남발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지 그들을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시민단체는 주요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살아 있는 권력’이다. 정부 재정 지원을 받는 곳도 많다. 정치와 시민사회의 ‘끈끈한 유대’를 우려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칼’이 공정하게 사용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는 정치권과 이미 충분히 가까워져 있다. 이번 김영란법 입법과정에서 시민단체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도 이 법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법 적용 대상이 300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관련 고소·고발, 진정 등이 급증할 경우 정작 전문화, 조직화되는 대형 비리에 대처할 수사 여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다 큰 물고기를 놓치게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도 나왔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직무와 관련 없이 100만∼200만원 받았다면 상대적으로 엄청난 부정부패는 아니다. 그런 ‘작은’ 사건들에 수사력이 분산되면 ‘민생치안’(경찰) ‘거악척결’(검찰) 등 진짜 힘을 쏟아야 할 곳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부장검사는 “기존에는 금품수수 규모가 작으면 기소유예하거나 불입건 처리했지만 김영란법은 100만원을 초과하면 공연 할인권이든, 숙박권이든 무조건 처벌하라는 것 아니냐”면서 “고소·고발로 법이 남용될 가능성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한정된 수사인력 때문에 사건을 선별해 처리하게 되면 ‘왜 나만 갖고 이러느냐’는 식의 저항을 하거나 수사에 불신을 갖게 될 수 있다”며 “모든 걸 형사처벌로 해결하려다보면 결국 그 우려된다는 ‘검찰공화국’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검사들은 다만 뇌물 수사의 기본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봤다. 한 검찰 간부는 “직무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영란법만 갖고 인지수사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정부경 문동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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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후폭풍] ‘고발공화국’ ‘검찰공화국’ 우려
입력 2015-03-05 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