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은 인터뷰 내내 현장을 얘기했다. 17년 검사생활로 안전과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은 봄날 눈 녹듯 사라졌다. 올 6월이면 우리 사회 압축성장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년이 된다. 다음달이면 삼풍 사고 닮은꼴인 세월호 사고 1년이다. 지난달 16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이 사장을 만나 삼풍 사고를 직접 수사한 경험과 안전 담당 공기업 사장으로서의 1년간 소회를 들어봤다.
-취임 1년이 됐는데 전기화재 점유율(전기로 인한 화재 비율)을 지난해 20%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등 성과가 눈에 띈다.
“작년 2월 21일 취임하자마자 현장부터 달려갔다. 전국의 67개 지방 사업소와 해외 사업소를 다 돈다는 각오로 발품을 팔았다.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책상머리에서 결재하고 보고받고 토론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듣는 귀가 곧 나의 스승’이라는 다짐과 본연의 기본 업무 수행에 역점을 둔다는 취지로 ‘본(本)경영’을 선언하고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니 현장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전기화재 점유율이 2013년 21.7%에서 지난해 19.7%로 낮아졌다.”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 속에 답이 있다는 뜻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했다)을 자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취지인가.
“현장을 한창 돌기 시작하는 와중에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기에 ‘저거 내가 먼저 썼어야 하는 건데”하며 내 것인 양 써먹었다(웃음). 그런데 진짜 현장에 답이 있더라. 현장에 엔지니어도 있고 경영관리직도 있지만 대개 한 곳에 오래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 엔지니어링 사업 한다고 하면 플랜트 발전기 송전 배전 검사 하나만 한다. 점검부는 일반 주택이나 일반용 전기설비 점검만 하지 다른 걸 모른다. 1년 돌다보니까 내가 총체적으로는 제일 많이 알게 되더라. 여러 사고 원인이 있지만 전기화재가 가장 중요하다. 이걸 우리 직원들이 진단 검사, 점검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며 필요성을 계속 얘기하고 다녔고 직원들이 잘해준 덕분에 지난해 11월 산업부 집중감사에서 무결점 감사를 받았다. 4주간 감사를 받으면서 한 건의 지적도 없었다.”
-삼풍 사건 수사를 주도하셨다. 아직도 세월호 사고 등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뭐가 문제라고 느끼는지.
“올해로 벌써 삼풍 사고 20년이 되는데 국민들이 안전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때 경부고속도로를 최단 기간, 최저 비용으로 완공하지 않았나. 그때 공사현장 사고로 숨진 많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금강휴게소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지금도 그런 것들을 상기하고 안전에 대해 생각하자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삼풍 사고 때 그렇게 떠들고 했지만 20년 뒤 세월호 사고가 나서야 다시 삼풍을 생각하는 거다. 앞으로 20년 후에도 그런 사고가 나면 삼풍과 세월호를 또 되새기만 할 것인가. 삼풍과 세월호는 구조상 아주 똑같다. 무너지려 하자 ‘잘못되면 고객들이 혼란스러워서 큰 사고 나니까 알리지 마’ 그렇게 해놓고 자기들만 빠져나갔다. 세월호 선장과 똑같다. 안타까운 역사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전기화재 점유율이 선진국에 못 미친다는데 더 낮출 수 있는 복안은.
“이임할 때는 15%까지 낮출 생각이다. 국민들 안전의식 강화 홍보를 좀 많이 할 생각이다. 국민들이 전기안전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도록 노출하는 게 중요하다. 또 전기화재 분류체계가 선진국이랑 좀 다르다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선진국에 맞게 분류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화재가 나면 소방서에서는 전선 녹은 걸 보고 무조건 전기화재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원인 규명을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냥 ‘전기화재 같다, 모터 탄 거 보니까 모터로 인한 화재 같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야 유사 사건 방지 대책이 나온다.”
-실생활에서 전기안전 관련 팁을 준다면.
“욕실에서 헤어드라이어 사용을 하면 안 된다. 보통 콘센트가 욕실에 있는데 아파트 공사 한 사람이 모르고 설치한 것일 뿐이다. 전기면도기도 욕실 콘센트에 꽂아서 쓰면 습기에 의해 합선될 수 있다. 완벽하게 닫을 수 있는 덮개가 달린 콘센트여야 하지만 그렇게 돼 있는 집이 별로 없다.”
-직원 소통의 비결은. 노조에서 붙여준 별명이 ‘동네 아저씨’라던데.
“책상이나 탁자 없이 의자만 놓고 둘러앉아서 ‘무릎 간담회’를 하고 있다. 직원들은 처음엔 ‘아니올시다’라는 반응이었지만 이젠 편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식객을 찾아서’라는 사내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본사를 전북 완주로 이전하다보니까 객지 생활하는 직원들의 애환을 보듬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만들어 먹는 ‘한 끼 음식’을 통해 소통과 공감대를 넓혀갈 계획이다. 앞으로 매달 한 명씩 숨은 식객을 발굴, 연말에 요리 경연대회도 개최할 것이다.”
-11월 초 국제전기안전연맹(FISUEL) 포럼이 서울에서 열리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전기안전 선진국이 연맹에 다 들어 있다. 2008년 서울서 연맹 총회를 개최한 경험도 있다. 우리의 전기안전 기술력과 리더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앞으로 우리 기술 해외전파 방안은.
“지난 1월 베트남 산업무역부 산하 산업검사센터와 전기안전 기술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동남아 전기설비 검사·진단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전기안전공사는 1995년부터 해외 엔지니어링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전력해왔다. 그동안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대형 플랜트 전기설비 정밀 진단과 전력 계통 분석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이런 경험과 기술을 인정받아 2012년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첫 해외 사업소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두 번째 사업소를 열었다. 앞으로는 국내 기업 해외 진출에 따른 기술지원뿐 아니라 해외 기업의 해외 플랜트 사업도 우리가 수주해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첫 진출 지역을 중국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이상권 전기안전공사 사장] “현장 돌다보니 답 나와… 역시 우문현답이 맞아요”
입력 2015-03-06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