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밀림서 1000년 전 고대문명 발견

입력 2015-03-05 02:35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 이끼로 뒤덮인 돌조각이 지구상에서 가장 외딴 정글 속에 누워있었다. 고양이 형상을 한 이 조각공예품은 사라져버린,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체가 파악되지 않은 고대 문명의 유물이었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1000년 전쯤 어느 곳에 원숭이를 신으로 모시는 도시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탐험가와 학자들은 ‘화이트 시티(White City)’라고 불리는 이 전설의 도시를 찾아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온두라스의 고고학 탐사팀이 이곳에서 문명의 흔적들을 찾아냈다고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탐사팀은 전 영국 공수특전단(SAS)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온두라스 북동부 모스키티아 해안의 열대우림에서 잃어버린 도시를 발견했다. 면적이 830억㎡에 달하는 모스키티아 지역은 하늘길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빽빽한 밀림이다. 탐사팀은 이곳에서 대규모 유물을 발견했다. 특정 형태의 샤머니즘이 이 문명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반인반묘(半人半猫) 모양 돌조각 주변에는 1000년 전 원형 그대로 보존된 조각품들이 있었다. 유물들은 흙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의 바닥 부분에서 발견됐다. 의식에 사용하던 석조의자와 뱀, 새 등으로 장식된 선박 조각 등 50여개 조각품의 윗부분이 바닥의 표면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이는 그 밑에 더 많은 유적이 묻혀 있을 것임을 확신시켰다. 탐사팀은 피라미드가 도시의 언덕, 광장, 둑 등으로 이어져 있다고 밝혔다. 약탈범으로부터 현장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의 정확한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탐험에 동행한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는 이날 유물 사진을 공개했다. 협회는 “이 사라진 문명은 거의 연구되지 않았고, 사실상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고고학자들이 아직 이 문명의 이름도 짓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탐사에 참여한 학자들은 “모스키티아에서 발견한 것은 단지 잃어버린 도시가 아니라 잠재적으로는 프리 콜럼비안(pre-Columbian) 문명 전체”라면서 “주변의 산에 흩어져 있는 이 문명의 흔적들은 10∼14세기 유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프리 콜럼비안 문명은 유럽의 지배가 시작되기 전 중남미에 존재했던 아스테카, 마야 등의 문명을 통칭한다.

16세기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중남미 아스테카 문명을 정복한 이후 수많은 탐험가들은 이 고대 문명을 ‘원숭이 신의 도시’라고만 알고 있을 뿐 실제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전설의 도시를 찾아내는 일을 ‘이룰 수 없는 꿈’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했다.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무착륙 비행을 최초로 성공한 미국인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1920년대에 창공에서 어렴풋이 이곳을 찾아내고 접근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 탐험가 시어도어 모르데도 1939년 이 도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으나 정확한 장소를 공개하기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2년 미국의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밀림에 레이저를 쏘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인간이 만든 건축물의 선들을 찾기도 했다.

학계는 최근 불법 목장 사업으로 이 지역의 삼림이 조금씩 파괴되면서 ‘잃어버린 세계’의 발굴 현장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비르힐리오 파레데스 트라페로 온두라스 고고학연구원장은 “지금 당장 나서지 않으면 근처 숲과 계곡 대부분이 8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면서 “정부가 이 지역을 보존키로 했지만 예산이 없어 국제 원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