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의 재발견’ 혹은 ‘가족의 부활’이라고 할만한 흐름은 분명 존재한다. 요리와 육아는 요즘 한국 텔레비전의 가장 인기 있는 소재가 되었다. 가정사 노출을 꺼리던 연예인들은 갑자기 삼둥이아빠, 딸바보, 차줌마, 집밥의 여왕, 살림 9단, 전원생활자, 요리사로 변신해 TV를 누빈다. 아침 방송과 토크쇼에서는 집안일을 소재로 한 ‘주부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인테리어, 목공, 집짓기, 텃밭 가꾸기, 홈스쿨링 등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유행이다.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식사를 함께 하는 킨포크 문화나 오래된 옛 물건을 찾는 빈티지 열풍도 거세다.
이런 흐름은 흔히 젊은 세대의 가족에 대한 가치관 변화로 해석돼 왔다. 미국의 젊은 여성 언론인 에밀리 맷차는 ‘하우스 와이프 2.0’에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가사일의 재발견, 가정의 부활, 주부라는 새로운 유행을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이것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거대한 변동’이고 ‘어쩌면 혁명적일 수도 있는 현상’이라며 이 시대를 ‘새로운 가정의 시대’로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치즈나 요구르트를 만들고, 잼과 피클을 담그고, 밀가루를 직접 제분하고 빵을 굽는 일이 먹거리의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정신으로 충만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기할 것 없는 소일거리가 되었다.
미국 어느 도시를 가건 소위 뜬다 하는 지역에는 예외 없이 텃밭이 생겨났으며, 유행을 선도하는 식당들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1930년대 조지아의 부엌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이다. 뜨개질을 하느라 “대바늘을 딱딱 부딪히는 소리는 시카고, 시애틀, LA 커피숍의 흔한 배경음”이 되었다. 수공예품을 만들어 거래하는 사이트 엣시(etsy.com)는 IT업계에서 페이스북을 이을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직장을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가 주부의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저자는 ‘시카고 트리뷴’ 신문사에서 일하던 에밀리, 은행과 IT업체의 간부였던 사라, 홍보업계에서 일하던 올해 29살 칼라, 공무원직을 때려 치고 주부로 변신한 캐나다 남성 루벤 등의 이야기를 통해 환멸에 빠진 젊은 직장인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언론들은 고학력 여성들이 여성 본능을 따르고 싶어 직장을 거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옵트아웃(opt-out)’ 혁명을 빈번하게 조명하고 있다. 이 말은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잘 나가는 직장을 버리고 나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는 이야기를 담은 2003년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사에서 비롯됐다.
저자는 광범위한 인터뷰와 자료 조사, 르포 등을 통해 지금 젊은 미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새로운 가정의 시대’를 보고하면서, 왜 우리 세대의 교육 수준이 높고 진보적이며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진저리 치던 가사일에 열광하는 것인지 파고든다. 또 젊은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 퇴행이 아닐까, 여성들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키게 되지 않을까, 여성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닐까, 직장 내 남녀평등은 더 후퇴하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해결책에 매달림으로서 사회적 해결을 포기하는 게 아닐까 같은 질문들을 검토한다.
“불안의 시대를 겪으며 가정의 부름에 이끌리다.” 저자는 이 문장으로 ‘가정으로의 귀환’을 설명한다. 그는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불신, 환경과 먹거리에 대한 걱정, 직장 생활에 대한 절망, 일에만 매달리며 살아온 부모 세대의 불행,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출세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 등을 거론하며 “현재 20대, 30대의 나의 세대는 환경과 경제가 너무나도 불확실한 이 시대에 진정 믿을 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가정의 시대’는 가능성과 위험성을 다 가지고 있다. 현대인의 빈 가슴을 채워주는 새로운 이야기이며, 직장에 절망하거가 삶의 무의미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을 바꾸어 보려는 용감한 행동이며, 정부와 기업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반소비 운동이며, 환경운동이고, DIY 문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환상이나 오류, 착각 등도 섞여 있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며, 사회적 변화를 만들기 위한 동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다. 아울러 여성들의 삶에서 재정적인 독립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 여성 작가 레슬리 베네츠는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가정의 시대를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경고한다.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삼포세대’ 담론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또 다른 젊은 세대가 이 사회에 보내는 절실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젊은이들은 왜 직장 떠나 가사에 매달리는가
입력 2015-03-06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