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페이스북·구글 등 미국 IT 기업에 칼을 겨누고 있다. 이들 기업이 독과점적 지위를 활용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고 소비자 편익을 해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EU는 이들 기업에 대응하기 위한 전담팀을 꾸리고 서비스·사업구조 개선에 나서지 않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며 압박했다. 그러자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국 IT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EU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서 개별 IT 기업에서 시작된 갈등이 국가 간 신경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페이스북 전담팀’ 꾸린 EU=EU의 개인정보보호당국(DPAs·Data Protection Authorities)은 페이스북의 새로운 개인정보보호정책이 법을 위반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지난달 3일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특히 EU 가입국 중 벨기에와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페이스북의 새로운 정보보호 정책이 위법성이 있다고 강하게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DPAs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고 있는 것은 이용자가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눌렀거나 로그인 했을 때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수집되는 문제다.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프로필 사진과 개인정보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 페이스북 소유 기업(와츠앱, 인스타그룹, 오큘러스, 아틀라스 등)들과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것 등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보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 1월 30일 개인정보보호정책을 변경하면서 별도 이용자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후 페이스북에 접속한 이용자들의 경우 변경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자동 처리됐다. DPAs는 이 같은 행위가 유럽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해석해 TF를 구성한 상황이다. 특히 독일 함부르크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페이스북을 상대로 서면 질의를 진행하는 등 구체적인 제재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DPAs는 TF 조사 결과에 따라 EU차원에서 페이스북에 불만 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페이스북은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이전에도 페이스북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논란에 “맞춤형 광고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
◇EU 압박에 구글 유럽 법인 통합=지난달 25일 구글은 유럽 북부와 서부, 남부와 동부를 총괄하는 2개의 법인을 통합해 영국 런던에 총괄본부를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 통합 법인을 지휘하게 되는 매트 브리틴 총괄은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면 여러 사업 기회에 대응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외신들은 이번 법인 통합 결정이 최근 유럽 전역에서 구글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EU 의회는 구글이 유럽 내에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자사 서비스와 콘텐츠를 검색 결과에 우선 반영하고 있다며 검색과 광고서비스를 분할토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384표, 반대 174표, 기권 56표의 압도적인 찬성을 받아 가결됐다. 유럽에서의 구글 검색 점유율은 92%가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결의안이 법적 구속력을 갖진 않지만 앞으로의 독과점 규제 등의 구글 관련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EU는 또 ‘세금 부과’라는 직접적인 제재로 구글을 압박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정보보호당국은 구글 이용자의 사전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행위를 바꾸지 않을 경우 벌금 1500만 유로(183억원)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은 구글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이익을 이전해 세금 규모를 줄이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지난해 말 다국적 기업의 수익 이전액에 25%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구글이 EU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60억 달러(6조6000억원) 또는 전 세계 연간 매출의 10%에 달하는 벌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독과점, 불공정행위로 인해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이 EU 반독점위원회에 소환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은 오히려 이용자의 ‘디지털 발자취’를 활용해 자사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사용자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 가장 필요한 정보를 보여주는 서비스인 ‘구글 나우’를 에어비앤비, 이베이, 포드, 가디언 등을 포함한 40여개 앱에서 지원하면서 개인정보 공유를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구글월렛’이 안드로이드 폰에 선(先)탑재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EU의 제재 수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구글월렛이 선탑재 되면 이용자가 굳이 다운로드하지 않아도 단말기를 구입하면 바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이용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vs EU 갈등으로 번져=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IT 업체에 대한 EU의 견제가 심해지자 이를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구글과 페이스북에 대한 유럽 제재는 이 지역 IT 기업을 돕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보인다”며 “유럽은 미국 기업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장애물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유럽 기업들이 미국 기업보다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U 의회 결의안 통과 당시에도 미국 정부 사절단은 “구글 문제를 정치쟁점화 하지 마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비난에 유럽위원회(EC) 대변인은 “규제가 오직 우리 기업만 보호한다는 지적은 잘못된 것”이라며 “오히려 이런 규제는 EU가 아닌 기업들이 우리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더 쉽게 해 준다”고 반박했다.
자사 애플리케이션을 단말기에 선탑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 법원은 구글 측의 손을 들어줘 구글이 반독점 이슈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도록 했다. 지난달 23일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소비자들이 구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판부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소송을 반려했다고 보도했다. 소비자들은 앱 선탑재로 인해 단말기 가격이 올라가는 등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정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EU는 오는 5월 유럽 모든 나라의 디지털 관련 제도를 하나로 통일하는 ‘디지털 단일시장’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어서 EU와 비(非)EU, 즉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경제 히스토리] 구글·페북에 칼 겨눈 EU… 美 부글
입력 2015-03-06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