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본점을 놓고 국내 은행과 외국계 은행의 스탠스가 확연히 갈리고 있다. 최근 글로벌 은행인 한국씨티은행과 한국SC은행은 각각 본점과 옛 제일은행 본점 매각에 나섰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본부 부서를 모두 수용할 본점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씨티은행은 서울 다동에 위치한 현 본점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부동산 투자회사인 마스턴투자운용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1997년부터 한미은행 본점으로 사용되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2004년부터 씨티은행 본점으로 쓰였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 새 둥지를 틀 계획이다. 건물을 매입하는 대신 임대해서 들어간다.
본점 매각은 ‘자산 효율화’ 명목으로 10여년간 진행된 과정 중 하나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가장 돈을 잘 굴릴 수 있는 곳이 은행이기 때문에 매입보다는 임대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업영업부서가 있는 서대문의 구 씨티은행 본점 역시 합병 이후 매각한 뒤 재임대해 사용 중이다.
SC은행은 현재 제일지점으로 사용되는 서울 명동의 구 제일은행 본점을 신세계에 팔기 위해 협상 중이다. 1935년 지어져 1987년까지 제일은행 본점으로 사용됐고, 서울시문화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물이지만 ‘실익’을 택했다. 새로운 채널사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SC은행은 신세계와 제휴, 태블릿PC를 이용해 2∼3인이 근무하는 미니 점포를 백화점과 이마트에 입점하기로 했다.
반면 토종 은행들은 ‘본점 소유’와 ‘확충’에 방점을 찍었다. 거대 조직이 들어갈 만한 임대건물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적당한 곳을 물색하고 있는데 큰 조직이 전부 들어갈 만한 곳을 임대하기가 쉽지 않다”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외국계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통합 본점을 염원하는 명목은 흩어진 부서 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다. 국민·신한·하나은행은 모두 인수·합병을 통해 거대 은행으로 성장했다. 조직은 커졌는데 건물은 과거 그대로이다보니 본부 조직이 3∼4곳에 흩어져 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통합 본점 얘기는 10년째 반복되고 있다. 구 국민·주택·장기신용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국민은행은 여의도와 명동에 4개의 건물을 사용 중이다. 업무 협의가 필요할 땐 번번이 이동해야 한다. 실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면서 명동의 지주 조직은 업무 효율성을 위해 여의도로 이전해왔다. 어윤대 전 회장 당시 여의도 MBC 부지와 삼성동 한전 부지 등의 매입이 논의됐으나 실현되진 못했다. IFC 건물 이전도 나왔지만 퇴짜를 맞기도 했다.
신한은행도 조흥은행과의 합병 이후부터 꾸준히 통합 본점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엔 청계천변 광교 일대 건물을 물색한다는 얘기도 돌았지만 아직 구체안은 나오지 않아 소문에 머물러 있다.
보람·충청·서울은행과의 연이은 합병으로 본점 공간이 부족한 하나은행은 아예 본점을 새로 짓기로 했다. 지난해 공사를 시작해 2017년 입주 예정이다. 마땅히 들어갈 곳이 없기도 하지만 중구 을지로1가에 자리 잡은 지 30여년 만에 국내 굴지의 은행으로 성장한 만큼 본점을 팔고 새로운 곳으로 가기보다는 상징성을 살리는 선택을 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기획] 외국계 은행이 팔아치울 때 토종 은행은 키우고 새로 짓고… ‘본점’의 경제학
입력 2015-03-05 02:16 수정 2015-03-05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