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후폭풍] ‘직무 관련성’은 처벌 필수적 요건… 예외 찾기 힘들다

입력 2015-03-05 02:06 수정 2015-03-05 09:19
1996년 캘리포니아의 농축산물 회사 ‘선-다이아몬드(Sun-Diamond)’는 전직 농림부 장관에게 여행경비 등 5900달러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은 “공무원이 이익을 수수하면 ‘공무에 관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부정이익 수수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순회법원은 항소심에서 “법률 규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이 판결을 파기했다. 사례금이 특정 공무집행에 대한 보상이거나 공무와 관련해 호의를 높이려는 의도가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했는지 따져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1999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순회법원의 판단에 손을 들어주며 무죄를 확정했다. 단지 공무원이라고 해서 작은 사례 하나하나까지 모두 부정이익 수수죄로 처벌하는 건 불합리하며, 그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선-다이아몬드 판결’은 공직자의 부정이익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일반적인 호의 관계’ 이상은 돼야 한다는 준거로 작용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지난 3일 압도적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범죄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형벌부터 행정제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공무원 뇌물·부정청탁 윤리규정을 보유한 미국도 ‘선-다이아몬드 판결’처럼 사례금의 직무 관련성을 엄격히 판단하고 있어서다.

해외 사례를 찾아봐도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토록 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세계적인 반부패운동 흐름 속에서 주요 국가들의 부패방지 법률이 엄격해지고 있지만 직무 관련성만큼은 여전히 필수적인 범죄 구성 요건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는 공무집행에 영향을 미치려는 ‘부패의 고의’가 없어도 부정이익 수수죄로 처벌할 수 있게끔 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 부정이익이 인정되려면 부패의 고의가 없더라도 직무 관련성은 확인돼야 한다.

공직자뿐 아니라 기업 종사자에게도 뇌물방지법을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영국도 이 같은 흐름은 마찬가지다. 영국의 뇌물방지법은 공직자가 부정한 업무수행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익을 제공받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부패범죄 논의의 핵심 요소는 직무 관련성이다. 부패 범죄에 관해 자세한 형법상 구성 요건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독일 역시 직무수행과의 관련성을 처벌 요건으로 두고 있다.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