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후폭풍] 4대 문제점은… (1) 21세기 연좌제? 배우자 신고 의무화, 헌법정신과 충돌

입력 2015-03-05 02:24 수정 2015-03-05 09:16

공직사회 부패척결 기틀 마련을 위해 제정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4일 법 통과 하루 만에 졸속 입법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위헌논란, 과잉입법, 언론자유 침해, 경제 위축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도 이미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무시됐다.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 전반의 대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법 시행 전 미비점을 꼼꼼히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①불고지죄·연좌제 부활?=공직자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아챘을 때 신고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포함되면서 불고지죄 논란이 제기됐다. 범죄은닉은 당연히 처벌받지만 형법에도 은닉 대상이 가족이나 친족인 경우는 특수성을 감안해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도 본회의 반대토론에 나서며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신고하면 이 배우자는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을 것이 뻔한데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배우자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본인이 처벌받게 되는 건 ‘연좌제 금지’라는 헌법 정신과도 정면충돌한다. 배우자가 직업을 갖고 있을 경우 사회활동을 위축시킬 우려도 제기된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나 몰래 돈 받았다고 임신한 부인을 신고하는 남편이 어디 있겠느냐”며 “기존의 사법체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고 했다.



②시민단체·변호사·회계사 등은 왜 빠졌나=형평성 논란은 법 적용 대상에 민간 영역인 사립학교와 언론사가 포함되면서 지적되는 문제다. 사립학교와 언론사는 사회적 공공성이 높은 직종이지만 공공기관은 아니다. 권익위가 제출한 원안에 공립학교와 공영방송인 KBS·EBS가 포함됐고,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 위원들이 같은 직종 전체로 단순 확대하다 생긴 일이다. 여야는 같은 직종 간 ‘형평성’ 차원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공공성을 지닌 사회 각 분야로 확대할 경우 적용 범주의 형평성 시비를 벗어날 수 없다. 김영란법대로라면 대학병원의 경우 제약업체의 ‘관리’를 받은 의사가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면 김영란법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일반 의사는 처벌받지 않는다. 정직원일 경우 언론사 운송직, 인터넷 언론사 경비직까지 모두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은 “(공공성을 이유로 언론인을 적용 대상에 포함했으면) 대기업 관계자, 변호사, 의사, 시민단체는 왜 뺐느냐”며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원칙이 없다”고 지적했다.



③호텔·골프장은 물론 식당·숙박업소 등까지 직격탄=처벌 기준이 직무연관성과 무관한 ‘금액’(1회 100만원 초과)으로 정해지다 보니 소비 침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품의 범위는 현금 외에도 숙박·입장·할인·초대권 등 재산적 이익과 식사·골프·주류 등 접대·향응, 교통·숙박 등 편의 제공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접대가 이뤄지는 고가의 식당이나 술집, 골프업계는 직접 타격이 불가피하다. 백화점과 호텔 업계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연쇄반응이다. 유통업체는 물론 식당이나 백화점 등에 납품하는 농산물 업체, 명절 선물 대목을 기다리던 농어촌 종사자들까지 타격을 받을 우려가 제기된다. 권성동 의원은 “승진이나 영전 축하를 위해 난을 선물하는 경우 화훼농가 등 관련 상권이 고사될 것이라는 걱정까지 계속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④‘부정청탁’ 등 개념 모호해 검찰 권한 확대=뇌물죄는 검찰이 대가성을 입증해야만 처벌할 수 있지만 김영란법은 직무연관성이 있거나 수수금액이 크면 곧바로 처벌 대상이 된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수사 대상을 ‘수월하게’ 처벌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법 규정이 모호해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검찰의 권한이 커진다는 데 있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유형을 규정해 놓고 있지만 여전히 애매한 부분이 많아 해석의 여지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직무 연관성 자체도 포괄적이고, 금품수수 예외조항인 ‘원활한 직무 수행, 사교·의례를 위한 경조사비나 선물’도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모호하게 적용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자의적 잣대를 들이댈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라디오에 나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검찰의 권력 남용”이라며 “이를 막기 위한 부대의견이라도 제시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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