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난 3일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킨 ‘김영란법’은 애초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과녁도 겨냥하게 됐다. ‘벤츠 여검사’ ‘스폰서 검사’를 처벌하기 위해 설계됐던 이 법은 엉뚱하게도 그런 검사들의 비리를 보도해 알린 민간 언론사까지 한 묶음으로 조준하게 된 것이다. 국회가 나서면서부터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해 5월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국가 지원을 받는 KBS·EBS를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지 토론한다.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비틀대기 시작한 논의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다 넣자. 종편이고 뭐고 전부. 인터넷 신문, 종이 신문도 넣고(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 “언론기관이 하는 부정청탁은 기사를 매개로 광고 달라고 해서 ‘너 안 주면 기사로 조질 거야’라고 하는 거지요(같은 당 김기식 의원)” “언론까지 포함해서 다…(새누리당 김용태 의원)” 단 이틀간의 토론 만에 국민일보와 같은 민간 언론사 소속 기자들도 김영란법에 한해서만은 ‘공직자’ 대접을 받게 됐다.
이후 벌어질 문제는 불 보듯 뻔하다. 검찰·경찰은 마음만 먹으면 ‘내사’ ‘수사’의 명목으로 비판 언론을 들볶을 수 있다. 안 그래도 자의적인 수사·기소권 남용으로 비판받는 사정기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이것들(기자) 웃기는 놈들 아니야 이거…지들 아마 검·경에 불려다니면 막 소리 지를 거야(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시절)” 이런 협박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언론사라고 부정부패의 성역은 될 수 없다. 기자들이라고 금품·향응 수수에 면죄부를 발급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회판 김영란법’이 씁쓸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고려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밉다고 언론자유까지 함부로 도매금으로 내다 팔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에 택하라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2015년 한국 국회의 언론자유 감수성은 200여년 전 미국 정치인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모양이다.
임성수 정치부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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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자-임성수] 도매금으로 넘어 간 언론자유
입력 2015-03-05 02:31 수정 2015-03-05 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