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는 기본적으로 ‘승자 독식’ 구조다. 대선에서 이긴 쪽이 장관에서부터 주요 기관장, 심지어 민간 부문까지 손을 뻗어 챙길 수 있다. 승자는 전리품 챙기듯 모든 자리를 싹쓸이하고 패자에게는 한 자리를 내주는데도 인색한 게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그러니 패자는 승자에게 독을 품고 사사건건 헐뜯으며 여야가 죽기살기로 싸우는 구태가 되풀이됐다. 중앙정치의 축소판인 지자체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가 시도하고 있는 연정(聯政) 실험은 적잖은 실마리를 주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6월 취임 후 여야 정책협의회와 인사청문회를 도입하고, 이제는 예산도 같이 편성하자고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기우 전 의원을 사회통합부지사에 임명했다.
이 부지사에게는 보건복지국과 환경국, 여성가족국, 대회협력담당관실의 인사와 예산권까지 주어졌다. 3개 실국의 소관 예산은 4조2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23.6%에 달한다. 그는 6개 산하 기관장에 대한 인사추천권도 갖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파격이다.
권력 나누니 트집잡기 사라져
권력을 조금 나누니 큰 변화가 생겼다. 도와 도의회가 늘 으르렁대며 서로 말도 잘 섞지 않았던 이전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히려 야당에선 “이러다가 ‘야합’ 소리를 듣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우선 여야가 한배를 타는 느낌이 드니 야당도 공격 대상이 모호해졌다. 연정으로 동업자 입장이 되면서 불필요한 ‘트집잡기’는 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경기도와 도의회는 지난해 연말 예산안도 거의 잡음 없이 처리했다.
도에서 먼저 제안한 6개 산하 기관 인사청문회도 ‘신상털기’나 공개적인 ‘망신주기’ 없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센터장 자리는 2명의 부적격자가 후보로 올랐다가 문제가 있다는 도의회의 지적에 따라 소리 없이 낙마했다.
경기도의회는 전체 128석 중 새정치민주연합이 78석, 새누리당이 50석인 전형적인 여소야대 구조다. 그럼에도 ‘도의회의 발목잡기’란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결국 ‘조용한 경기도’는 연정 효과 외에 달리 설명할 근거가 없는 것 같다. 남경필 지사는 연정에 대해 “기득권을 내려놓으니 소통의 길이 보이더라”고 했다. 이기우 부지사는 “연정의 기본정신은 독식이 아니라 상생과 소통이다. 이게 정착된다면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라고 자평했다. 물론 연정을 놓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권력 분점을 하고나니 야당이 본연의 감시와 견제, 비판 역할을 잊고 ‘나눠먹기’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양근서 경기도의원은 “연정 이후 남 지사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도의회가 감시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며 “이렇게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가 되면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승자독식 폐해 끊는 좋은 선례
그럼에도 여야 간 ‘멱살잡이’ 구태를 끊은 건 분명한 연정의 효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정치에선 승자 독식 관행이 되풀이되다 보니 늘 야당과 국민들은 울화가 치밀고 결국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측면도 있었다. 역대 거의 모든 정부마다 ‘측근 챙기기’ ‘코드 인사’로 늘 비판을 받았고, 현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대통령이 야당에 장관 한두 자리를 해보라고 권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이번 개각을 앞두고도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인사를 기용하면 히트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은 ‘경기도식 연정’을 공약으로 내걸어 실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노석철 사회2부장 schroh@kmib.co.kr
[데스크시각-노석철] 남경필의 연정 실험 그 후
입력 2015-03-05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