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복지·증세 선거로 가리자

입력 2015-03-05 02:20

복지정책과 증세를 둘러싸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방만한 재정운용과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결손 등도 이유지만 무상보육, 기초연금, 무상급식 등 많은 예산이 필요한 복지정책들이 몇 년 사이 잇따라 확대·시행되면서 재정 압박이 심해진 게 논란을 불렀다. 쓸 곳은 많고 돈은 부족하니 재원 분담을 놓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내건 박근혜 대통령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부의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체계 개편, 주민세 인상 등을 추진했으나 ‘꼼수 증세’라는 비난과 조세저항에 직면했다. 재원 대책을 소홀히 한 채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여건이 심상치 않자 여당 내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재정난 타개 방안으로 증세를 통한 복지 유지보다는 복지지출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기류가 강하다.

반면 복지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런 주장의 근저에는 한국은 여전히 복지결핍 사회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은 1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 회원국 평균(21.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권이다. 비정규직 양산, 취업난, 소득 양극화 등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어 사회안전망을 좀더 조밀하게 짜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재원 마련 대책이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현 수단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다면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노무현정부 후반기인 2006년 발표한 국가 중장기발전계획인 ‘비전 2030’도 그랬다.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 삶의 질 세계 10위 달성을 목표로 50개 과제를 제시했지만 1100조원(물가상승률 반영가격)의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은 모호했다. ‘장밋빛 전망’이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쏟아졌고 결국 유야무야되는 운명을 맞았다.

저성장과 복지수요 증대의 시대로 접어든 한국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다. 핵심을 비켜간 채 지금처럼 임기응변식 처방만 내놓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과 혼선을 초래할 뿐이다. 복지 수준과 복지 지출 비중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지 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통해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자기 주머니에서 세금 나가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국민들이 증세에 반대만 하는 건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들은 복지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조세정의를 전제로 세금을 더 납부할 의사가 있는 이들도 많다는 걸 보여준다. 부의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조세제도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작동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소득에 비례해 과세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명박정부 때 25%에서 22%로 감면한 법인세율을 원상회복하고 소득세도 누진체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한다. 탈세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성실납세자들의 피해의식을 걷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복지 전달체계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개선해 예산 낭비와 누수를 막는 것도 과제다.

정치권이 제대로 논쟁을 했으면 좋겠다. 복지·조세정책에 대한 논의를 숙성시켜 총선과 대선에서 평가를 받아보는 건 어떨까. 진영 논리나 지역주의에 매몰된 묻지마식 투표를 정책투표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